잔인하게 죽은 비극의 왕비들, 혹은 여성 권력자들(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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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여성 권력자들(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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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 부인 강씨


궁예부인 강씨


궁예라고 하면 ‘관심법’으로 유명한데, 그의 아내는 강씨 성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정사에 고작 몇 줄 뿐이지만, 관심법을 사용한다는 남자와 결혼 했으니, 하루 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을 것이다. 특히나 여성은 이름도 기록하지 않던 시대였고, 궁예도 점점 폭군이 되어가고 있던 시기였으니, 그녀 역시, ‘관심법’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날로 미쳐가는 궁예에게, 강비가 “옳지 않은 일을 많이 한다.”고 충언을 올렸는데(ㄷㄷㄷ), 이 말이 궁예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 같다. 궁예는 이에 바로 ‘관심법’을 사용하였고, 강비의 심연을 꿰뚫어 보며 말하기를, “네가 다른 남자와 간통하니 어찌 된 일이냐” 그리고 나서 강씨에게 간통죄를 씌웠고 강씨의 두 아들까지 “내 아들이 아니다.” 라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강씨는 물론, 자신의 아들까지도 내치는 모습을 보였다. 궁예가 강비를 죽인 장면은 정말 참혹했는데, “다른 남자와 간통하여 더러운 씨를 남겼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에게 끔찍한 형벌을 내렸다. 무쇠 방망이를 불에 달구어, 음부를 쳐서 죽였다. 강씨는 이토록 끔찍한 형벌을 받았지만 정작, 불륜에 대한 증거는 ‘관심법’ 뿐이었다.


제인 그레이 (Lady Jane Grey)


제인 그레이


즉위기간이 9일로, ‘9일 여왕’ 으로 알려져 있는 제인 그레이는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 없이 부모에 의해 정략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후 주변의 신교도들에 의해 여왕이 되었는데, 메리 1세 (피의 메리:Blood Mary)가 재 집권하면서 런던탑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게 되니 그녀의 부모는 그런 제인을 버려 두고 도망쳤다. 그래서 ‘블러디 메리’ 라는 잔혹한 별명을 가진 잔인하기로 소문난 메리 1세 조차도, 처음에는 제인을 동정하여 살려주려 했다. 그리고, 메리 1세는 자신의 왕권이 안정되면 제인 그레이를 풀어줄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이후, 제인의 아버지가 또 다시 반란을 일으키며 여론은 제인을 죽여야 된다고 기울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인을 살려주고 싶었던 메리는, 신교도였던 제인 그레이를 구명하기 위해 ‘구교로 개종하면 살려주겠다’ 는 제안을 했으나 원래, 제인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 이를 거부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형 당할 당시 제인 그레이의 나이는 16세, 그녀는 어린 나이에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 되었는데, 사형 집행인들 조차도 그런 그녀를 동정했다. 그녀는 마지막 기도를 드리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캐서린 하워드 (Kathryn Howard)


캐서린 하워드


캐서린 하워드는 헨리 8세의 5번째 왕비이다. 원래는 전 왕비 클레페 앤의 시녀였는데, 어린 캐서린의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성격이, 헨리 8세의 눈에 들어 왕비가 된 것이다. 이에, 헨리 8세는 ‘가시 없는 장미’ 라고 부르며  캐서린을 상당히 총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왕비가 되기 전 사실 혼 관계에 있던 일과, 헨리 8세의 젊은 시종과의 불륜이 탄로나면서, 헨리 8세는 크게 충격을 받아 분노하였고, 관련된 남자들을 피부를 벗겨 잔혹하게 죽였다. 




헨리 8세는 아래와 같은 법 조항까지 만들었다. ‘왕비가 될 여자가 과거를 숨기는 것은 반역죄’ 죽기 직전에 제인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결혼만 6번 한 나이 많은 권력자 헨리 8 세와, 철없는 어린 왕비의 조합이 부조리해 보이고 오히려 캐서린을 동정하게 되는 것은, 단지 시대가 다르기 때문일까?


엘레나 차우셰스쿠 (Elena Ceauşescu)


엘레나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의 부인으로, 대통령궁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분노한 국민들이 루마니아 혁명을 일으켜, 니콜라에의 정권이 급작스럽게 붕괴하게 되자, 그들 부부는 외국으로 도망치려고 하였으나, 결국 붙잡히게 되었고 사형을 선고 받았다. 체포된 후에도 군인들이 먹는 음식을 주자, ‘인간이 먹을 수 없는 음식’ 이라며 거부했고, 개인 욕조를 가져다 줄 것을 요구하는 등끊임 없이 불만과 요구 사항을 늘어 놓았다. 갇혀 있는 와중에도 부부의 사이는 좋아서 이들 부부는 잠잘 때 부둥켜 안고 잤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부부의 뻔뻔하고 오만한 태도에 그들의 변호사도 변호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녀의 죄목은 6만 명 이상의 참혹한 대 학살, 경제 파괴, 공공 재산 착취, 도주 기도 등이었다. 사형 당일,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그녀는 ‘나는 어머니로서 너희들을 대해왔다.’ 하고, ‘자신의 몸에 손대지 말라’ 호통치는 등, 계속해서 현실 감각 없는 말을 하였고, 사형 집행 시, 군인들이 너도 나도 총을 쏘겠다고 지원하는 바람에, 약 160 발의 실탄을 준비했다고 한다. 원래 한 명 사형 시키는데 5 발의 총알만 사용하고, 죄책감을 덜어 주기 위해 공포탄이 섞여 있는데, 160 발의 총알을 모두 실탄으로 준비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당시 국민들의 분노를 보여준다.


아달랴 (Athaliah)


아달랴


배경은 당시에 이스라엘은 분단 되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뉘어 있었다. 북 이스라엘의 공주였던 아달랴는, 남 유다 왕과 정략 결혼을 했다. 이후, 그녀의 아들이 남 유다 왕이 되었을 때, 북 이스라엘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왕과 왕비였던, 그녀의 부모들이 살해 당하고, 이에 조문을 갔던 아들들도 모두 살해 당하면서, 아달랴는 이에 위기감을 느껴 측근을 동원하여 남 유다의 모든 왕족들을 몰살 하였고, 스스로 남 유다의 7대 왕에 올랐다. 그녀는 남 유다 북 이스라엘을 통틀어 유일한 여왕이었다. 이후, 아달랴는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하여,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모든 사람을 제거했다. 하지만 죽은 전 왕(아달랴의 아들)의 누나가 어린 요아스 왕자(아달랴의 손자)를 숨겨주었고, 어린 왕자는 할머니 아달랴의 눈을 피해 6년 간 성전에 몰래 숨어 지내다가 7살이 되자 그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은 요하스 왕자를 왕으로 선포하였다. 아달랴가 반란이 일어났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서 반란에 대응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모반이다! 모반이다!” 라고 외쳤으나, 주변의 아무도 그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이후,사람들이 그녀를 처형했을 때에도 모든 국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고 한다.


*몇몇 사진들은 역사적 인물과 관계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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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불린 (Anne Boleyn)


앤 불린 이미지


앤 불린은 헨리 8세의 2번째 왕비로, 헨리 8세는 앤과 결혼하기 위해 첫번째 왕비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려고 나라의 종교까지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녀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그녀에게 간통, 근친상간, 마법으로 왕을 유혹했다는 혐의를 씌워 참수형을 내리는데, 검을 잘 쓰는 사람을 고용하고, 날카로운 칼을 준비하여, 최대한 고통 없이 죽였다... 고는 하지만, 사실 앤 불린의 죄목들은 증거가 부족하였고, 정황상 아무리 봐도, 이는 단순히 헨리8세의 변심과 앤 불린이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에 초래한 결과로 보인다. (개인적 생각) 또한 앤 불린은 초반에 왕의 제안(?)을 거부하며 왕을 더욱 안달 나게 만드는 팜므파탈로 알려져 있지만, 개인 적으로는, 그녀는 그저 헨리 8세의 욕심과 왕실의 대를 잇기 위해 쓰고 버려진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왕을 원망하지 않았고 축복하며 죽어갔던 것은, 여전히 헨리 8세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랑하는 딸을 지키기 위함 이었을까?


메리 스튜어트 (Mary Stuart)


메리 스튜어트 이미지


프랑스의 세자빈이었던 메리는 남편인 프랑수아 2세가 즉위하자 마자 죽는 바람에, 고국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같은 할머니를 둔 사촌 헨리 스튜어트 단리경과 결혼했다.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된 메리는 사실상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잉글랜드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는 (위에 나온 헨리8세가 아들이 없어서 여왕이 됨) 그녀와 정적 관계에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남편인 단리 경이 목 졸려 살해 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 배후에는 보스웰 백작 제임스 햅번이 있었다고 추정되며, 그 후 그는 메리를 납치하여 강간 했다. 여러가지 압박을 받아오던 메리는 자신을 납치, 강간 했던 보스웰 백작과 결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전 남편인 단리경을, 보스웰 백작과 공모하여 살해했다는 의심까지 받게 되며, 메리의 평판과 인기는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적법한 왕위 계승권자였고, 주변에는 그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그녀는 여러 번의 반란을 일으키면서, 셰필드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정적인 그녀를 경계하면서도, 죽일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메리가 모반을 꾸몄다는 한 통의 편지가 발견 되면서 모반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끝까지 결백을 주장 했으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죽기 전에 그녀는 조건을 걸었는데, 째, 자신을  프랑스에 묻어줄 것둘째는 자신의 시종들에게 연금을 줄 것마지막은 처형은 공개된 장소에서 할 것이었다. 또한 그녀의 목을 치는 데 3번 걸렸다고 하는데, 처음은 잘못 맞아 뒤통수에 박혔고, 다음은 목에 약간의 힘줄만 빼놓고 거의 절단, 마지막으로 한번 더 목을 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인 마누스 투아스 도미네 콘피데 스피리툼 메움 (In manus tuas Domine confide spiritum meum) “주여 당신께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명성황후


명성황후


나는 조선의 국모다“는 드라마와 뮤지컬에 등장해  한국인들에게 많은 감동을 줬던 대사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녀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외세를 끌어들였고,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한 나라의 국모가 일본군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당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그녀의 행적과는 별개로 한국인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의 비참함은 여러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에조 보고서, 매천야록, 우범선 최후사 등이 있다. 영국 데일리 메일의 기자이자, 조선주재 특파원인 프레드릭 매킨지(Frederick Mckenzie)에 의하면, 오카모토 류노스케가 방 한 구석에 숨은 여인을 발견하고, 머리채를 붙잡고 황후가 아니냐 물었다. 왕비가 이를 부인하며 마루 밑으로 도망 치려는 순간 일격을 가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왕비가 정체가 탄로 나자 살려 달라고 애걸 했으나 일본인들이 칼로 내려쳤다는 기록도 있다. 숨어있던 왕비를 끌어내어 두세 군데 칼로 상처를 입히고, 발가벗긴 후 국부검사를 하였다.

 

 
이는 궁녀들과 비교하여 임신 흔적을 조사하여, 왕비인지 여부를 알아내기 위함 이였다고 한다. 위의 일화는 에조 보고서의 항목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꽤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왕비의 신원 확인 방법에 대해서는 기록들의 설명이 제각각 엇갈려, 여러 설이 있다. 미우라 고로 공사는 아침에 경복궁에 들어와 직접 왕비의 시체를 확인한 후 증거인멸을 위해 이를 불태워 없애라고 명령했고, 낭인들은 경복궁 뒤편 건청궁 동쪽 녹원에서 시체를 불태웠다.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d'Autriche)


마리 앙투와네트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로,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그 당시 비참한 삶을 살던 프랑스 국민들은 결국 혁명을 일으켰고, 왕비는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녀에게는 재정 낭비, 부정부패, 오스트리아와 결탁, 루이 16세를 타락 시킨 혐의, 백성을 기만한 혐의, 프랑스를 멸망 시키려는 시도, 전쟁 유발 등, 여러가지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그 어느 것도 그녀를 사형 시키기는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세뇌 당한 어린 루이 17세가 어머니에게 겁탈 당했다”는 증언을 하고 말았고, 결국 유죄로 인정되어 사형이 선고되었다. 참수형 당일 그녀는 특별 죄수로서, 거름 통을 싣는 짐 수레에 실려 사형장으로 끌려갔으며, 머리는 짧게 깎여져 있었고, 두 손은 묶여 있었다.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일화로 그녀가 단두대 앞에 설 때 실수로 사형 집행인의 발을 밟았는데 “실례합니다 무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라고 했다고 한다. 또한 근친상간으로 처형 당하기 전 유언장에 부끄러워 할 것 없어요, 나는 죄를 지어서 죽는 게 아니니까요.” 라고 적은 것을 보아 그녀는 정치와 거리가 먼 순수한 사람이며 시대의 희생양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 당시 프랑스 국민들의 처지를 살펴보면 무지가 곧 죄이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세벨 (Jezebel)


이세벨 이미지


이세벨은 기원전(BC)의 인물로, 이스라엘의 7대왕인 아합의 왕비이다. 그녀는 페니키아 왕 엣바알의 딸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며, 바알을 숭배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믿는 신 야훼를 미워하여,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거의 모두 다 죽였다. 성서에도 유일하게 살아 남았던 예언자 엘리야와 이세벨이 대결하는 장면이 곳곳에 나올 만큼, 그녀의 야훼에 대한 증오심이 컸고, 이스라엘 국민들 역시 바알을 숭배 하도록 만들었다. 아무래도 기원 전 종교였으므로, 문란하고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이 많았던 바알 숭배는 야훼 신앙이 자리 잡고 있던 이스라엘을 빠르게 타락 시켰고, 이스라엘의 국권 역시 쇠약해져 갔다. 한편 그녀는 그 당시의 여걸 이었다. 반란을 일으킨 예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도망치지 않았으며, 자신의 아들인 요람왕이 죽었음에도 슬픈 기색이 없이, 예후가 자신을 죽일 것을 알고도, 화장을 하고, 머리를 손질할 만큼 담대 했다. 예후가 성에 도착하자, “주인을 죽인 시므리여, 평안하냐?” 라며 예후를 비꼬아 말했는데, 이때 시므리는  군대 장관으로 엘라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으나, 7일 만에 오므리에게 죽음을 당한 사람이었다. 즉 예후를 반역자라고 부른 것이다.(이름 어렵네ㅠ) 그러나 예후가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라고 묻자, 내시 두 명이 그녀를 창문 밖으로 던졌다. 후에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체를 찾았는데, 그녀의 시체를 개들이 다 뜯어먹은 뒤였고, 남은 것은 두골과, 발과 손바닥 밖에 없었다. 한편 이 전에 예언자 엘리야는 이세벨의 죽음을 예언 했는데, 그 내용은 “개들이 성읍 곁에서 이세벨의 시체를 먹으리라”라는 것으로 결국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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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여왕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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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 역사 이야기 - 소풍같은전쟁, 미서전쟁, 뉴프런티어, 신미양요, 유진, 갑오개혁

미스터 션샤인 역사 이야기

소풍같은전쟁, 미서전쟁, 뉴프런티어, 신미양요, 유진, 갑오개혁


안녕하세요, 꼬꼬입니다^^

오늘은 미스터션샤인의 대사에 등장하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미양요 이미지


미스터 션샤인, 요즘 정말 국민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죠?

또한 내용과 시대 배경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말

민감한 역사적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것 같아요.


역사책 이미지


오늘은 그 중에서도 1화에 등장한

소풍같은 전쟁, 미서전쟁, 제너럴셔먼호 사건, 엘카네이 전투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갑오개혁

그리고 극중 남자 주인공 이병헌이 연기하고 있는

'유진'이라는 이름에 대해 살펴보려고 해요.


2018/11/07 -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 - [미스터 션샤인 역사 배경] 뉴 프런티어 (New Frontier), 유진(Eugene)


(서양에도 유진이라는 이름이 있답니다.)


유진 이미지


미스터 션샤인 역사 왜곡 구설수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장면들도 있죠)




개인적 생각으로는 역사적 고증이

철저하게 잘 된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김은숙 작가님 정말 대단하네요~


여장군 이미지


미서 전쟁은 스페인과 미국이 벌인 전투에요.

익숙한 단어는 아니지만

당대 강대국이던 스페인을

미국이 이김으로써

오늘날의 경찰 국가로서의 미국이 성립될 수 있었죠.


미국 이미지


세계사와 한국사를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본다면

드라마의 재미가 배가 되겠죠?

덤으로 깨알지식도 늘어나구요~


다리 이미지


동영상 즐겁게 보시고

구독과 좋아요, 꾸욱~ 눌러주세요^^+++



미스터 션샤인 역사적 배경

유튜브 영상 보러 가기 클릭

 ↓

미스터션샤인의역사적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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