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게 죽은 비극의 왕비들,
혹은 여성 권력자들(下)
'잔인하게 죽은 왕비들(下)'을
유튜브 영상으로 보시려면
맨 아래 사진에 링크를 올려 두었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궁예 부인 강씨
궁예라고 하면 ‘관심법’으로 유명한데, 그의 아내는 강씨 성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정사에 고작 몇 줄 뿐이지만, 관심법을 사용한다는 남자와 결혼 했으니, 하루 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을 것이다. 특히나 여성은 이름도 기록하지 않던 시대였고, 궁예도 점점 폭군이 되어가고 있던 시기였으니, 그녀 역시, ‘관심법’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날로 미쳐가는 궁예에게, 강비가 “옳지 않은 일을 많이 한다.”고 충언을 올렸는데(ㄷㄷㄷ), 이 말이 궁예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 같다. 궁예는 이에 바로 ‘관심법’을 사용하였고, 강비의 심연을 꿰뚫어 보며 말하기를, “네가 다른 남자와 간통하니 어찌 된 일이냐” 그리고 나서 강씨에게 간통죄를 씌웠고 강씨의 두 아들까지 “내 아들이 아니다.” 라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강씨는 물론, 자신의 아들까지도 내치는 모습을 보였다. 궁예가 강비를 죽인 장면은 정말 참혹했는데, “다른 남자와 간통하여 더러운 씨를 남겼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에게 끔찍한 형벌을 내렸다. 무쇠 방망이를 불에 달구어, 음부를 쳐서 죽였다. 강씨는 이토록 끔찍한 형벌을 받았지만 정작, 불륜에 대한 증거는 ‘관심법’ 뿐이었다.
제인 그레이 (Lady Jane Grey)
즉위기간이 9일로, ‘9일 여왕’ 으로 알려져 있는 제인 그레이는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 없이 부모에 의해 정략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후 주변의 신교도들에 의해 여왕이 되었는데, 메리 1세 (피의 메리:Blood Mary)가 재 집권하면서 런던탑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게 되니 그녀의 부모는 그런 제인을 버려 두고 도망쳤다. 그래서 ‘블러디 메리’ 라는 잔혹한 별명을 가진 잔인하기로 소문난 메리 1세 조차도, 처음에는 제인을 동정하여 살려주려 했다. 그리고, 메리 1세는 자신의 왕권이 안정되면 제인 그레이를 풀어줄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이후, 제인의 아버지가 또 다시 반란을 일으키며 여론은 제인을 죽여야 된다고 기울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인을 살려주고 싶었던 메리는, 신교도였던 제인 그레이를 구명하기 위해 ‘구교로 개종하면 살려주겠다’ 는 제안을 했으나 원래, 제인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 이를 거부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형 당할 당시 제인 그레이의 나이는 16세, 그녀는 어린 나이에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 되었는데, 사형 집행인들 조차도 그런 그녀를 동정했다. 그녀는 마지막 기도를 드리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캐서린 하워드 (Kathryn Howard)
캐서린 하워드는 헨리 8세의 5번째 왕비이다. 원래는 전 왕비 클레페 앤의 시녀였는데, 어린 캐서린의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성격이, 헨리 8세의 눈에 들어 왕비가 된 것이다. 이에, 헨리 8세는 ‘가시 없는 장미’ 라고 부르며 캐서린을 상당히 총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왕비가 되기 전 사실 혼 관계에 있던 일과, 헨리 8세의 젊은 시종과의 불륜이 탄로나면서, 헨리 8세는 크게 충격을 받아 분노하였고, 관련된 남자들을 피부를 벗겨 잔혹하게 죽였다.
헨리 8세는 아래와 같은 법 조항까지 만들었다. ‘왕비가 될 여자가 과거를 숨기는 것은 반역죄’ 죽기 직전에 제인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결혼만 6번 한 나이 많은 권력자 헨리 8 세와, 철없는 어린 왕비의 조합이 부조리해 보이고 오히려 캐서린을 동정하게 되는 것은, 단지 시대가 다르기 때문일까?
엘레나 차우셰스쿠 (Elena Ceauşescu)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의 부인으로, 대통령궁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분노한 국민들이 루마니아 혁명을 일으켜, 니콜라에의 정권이 급작스럽게 붕괴하게 되자, 그들 부부는 외국으로 도망치려고 하였으나, 결국 붙잡히게 되었고 사형을 선고 받았다. 체포된 후에도 군인들이 먹는 음식을 주자, ‘인간이 먹을 수 없는 음식’ 이라며 거부했고, 개인 욕조를 가져다 줄 것을 요구하는 등, 끊임 없이 불만과 요구 사항을 늘어 놓았다. 갇혀 있는 와중에도 부부의 사이는 좋아서 이들 부부는 잠잘 때 부둥켜 안고 잤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부부의 뻔뻔하고 오만한 태도에 그들의 변호사도 변호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녀의 죄목은 6만 명 이상의 참혹한 대 학살, 경제 파괴, 공공 재산 착취, 도주 기도 등이었다. 사형 당일,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그녀는 ‘나는 어머니로서 너희들을 대해왔다.’ 하고, ‘자신의 몸에 손대지 말라’ 호통치는 등, 계속해서 현실 감각 없는 말을 하였고, 사형 집행 시, 군인들이 너도 나도 총을 쏘겠다고 지원하는 바람에, 약 160 발의 실탄을 준비했다고 한다. 원래 한 명 사형 시키는데 5 발의 총알만 사용하고, 죄책감을 덜어 주기 위해 공포탄이 섞여 있는데, 160 발의 총알을 모두 실탄으로 준비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당시 국민들의 분노를 보여준다.
아달랴 (Athaliah)
배경은 당시에 이스라엘은 분단 되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뉘어 있었다. 북 이스라엘의 공주였던 아달랴는, 남 유다 왕과 정략 결혼을 했다. 이후, 그녀의 아들이 남 유다 왕이 되었을 때, 북 이스라엘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왕과 왕비였던, 그녀의 부모들이 살해 당하고, 이에 조문을 갔던 아들들도 모두 살해 당하면서, 아달랴는 이에 위기감을 느껴 측근을 동원하여 남 유다의 모든 왕족들을 몰살 하였고, 스스로 남 유다의 7대 왕에 올랐다. 그녀는 남 유다 북 이스라엘을 통틀어 유일한 여왕이었다. 이후, 아달랴는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하여,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모든 사람을 제거했다. 하지만 죽은 전 왕(아달랴의 아들)의 누나가 어린 요아스 왕자(아달랴의 손자)를 숨겨주었고, 어린 왕자는 할머니 아달랴의 눈을 피해 6년 간 성전에 몰래 숨어 지내다가 7살이 되자 그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은 요하스 왕자를 왕으로 선포하였다. 아달랴가 반란이 일어났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서 반란에 대응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모반이다! 모반이다!” 라고 외쳤으나, 주변의 아무도 그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이후,사람들이 그녀를 처형했을 때에도 모든 국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고 한다.
*몇몇 사진들은 역사적 인물과 관계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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