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매국노]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대표적인 친일파]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대표적친일파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친일파 매국노

을사오적과 정미칠적, 경술국적은 각각 을사년(1905년)과 정미년(1907년), 경술년(1910년)에 일제가 우리나라의 주권을 침탈한 주요 사건에 찬성하고 협력한 대표적인 친일파 매국노를 이르는 말이다. 이 사건들은 각각 을사조약(을사늑약)과 정미7조약, 경술국치로 불리고 있다.

 

 

을사오적이란?

1905년(을사년) 11월 17일, 일제가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조약(을사늑약, 정식명칭: 제2차 한일협약)을 강제로 체결할 당시, 이 조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5명의 친일파 매국노 대신을 을사오적이라고 한다.

 

- 박제순(외부대신)

- 이지용(내부대신)

- 이근택(군부대신)

- 이완용(학부대신)

- 권중현(농상공부대신)

 

을사오적
을사오적

※외부대신: 외교에 대한 사무를 보던 외부의 최고 관직. 오늘날의 외교부 장관과 비슷.

※내부대신: 내무행정을 관장하는 내부의 최고 관직. 오늘날의 행정안전부 장관과 비슷.

※군부대신: 군사기관을 관장하고 군대를 총괄하는 군부의 최고 관직. 오늘날의 국방부 장관과 비슷.

※학부대신: 학무행정을 관장하는 학부의 최고 관직. 오늘날의 교육부 장관과 비슷.

※농상부대신: 농업과 상업, 공업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농상공부의 최고 관직.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을 합친 것과 비슷.

정미칠적이란?

1907년(정미년) 7월 24일, 고종을 퇴위시킨 후, 일제가 체결한 정미 7조약(한일 신협약)에 찬성한 7명의 친일파 매국노 대신을 정미칠적이라고 한다.

 

- 송병준(농상공부대신)

- 이병무(군부대신)

- 고영희(탁지부대신)

- 조중응(법부대신)

- 이재곤(학부대신)

- 임선준(내부대신)

- 이완용(내각총리대신)

 

정미칠적
정미칠적

 

※탁지부대신: 재무행정을 관장하는 탁지부의 최고 관직. 오늘날의 기획재정부 장관과 비슷.

※법부대신: 사법 행정, 경찰, 재판소를 총괄 감독하는 법부의 최고 관직. 오늘날의 법무부 장관과 비슷.

※내각총리대신: 국정을 총괄하는 내각의 수반, 최고위관직. 오늘날의 국무총리와 비슷.

 

 

경술국적이란?

1910년(경술년) 8월 29일,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 합병한 한일병합조약에 찬성하고 협조한 8명의 친일파 매국노를 경술국적이라고 한다.

 

- 이완용(내각총리대신)

- 윤덕영(시종원경)

- 민병석(궁내부대신)

- 고영희(탁지부대신)

- 박제순(외부대신)

- 조중응(법부대신)

- 이병무(친위부장관 겸 시종무관장)

- 조민희(승녕부총관)

 

경술국적
경술국적

친일파 분류

- 이완용: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모두 해당

- 박제순: 을사오적, 경술국적에 해당

- 조중응: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해당

- 이병무: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해당

- 고영희: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해당

 

→ 그렇다고 해서 친일의 정도가 꼭 개수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외에도 수많은 친일파들이 있다.

 

 

일제에게 받은 작위

- 후작: 이완용

- 백작: 이지용, 송병준

- 자작: 조중응, 박제순, 민병석, 고영희, 권중현, 이근택, 윤덕영, 조민희, 이병무, 이재곤, 임선준

 

→ 을사오적, 정미칠적,경술국적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일제에게 작위를 받았다.

→ 이완용은 백작에서 후작으로 승작했으며, 송병준은 자작에서 백작으로 승작했다.

 

※조선귀족의 작위 등급

공작 > 후작 > 백작 > 자작 > 남작

 

※친일파 사망 나이

고영희(1849 ~ 1916년): 68세

권중현(1854 ~ 1934년): 81세

민병석(1858 ~ 1940년): 83세

박제순(1858 ~ 1916년): 59세

송병준(1857 ~ 1925년): 69세

윤덕영(1873 ~ 1940년): 68세

이근택(1865 ~ 1919년): 55세

이병무(1864 ~ 1926년): 63세

이완용(1858 ~ 1926년): 69세

이재곤(1859 ~ 1943년): 85세

이지용(1870 ~ 1928년): 59세

임선준(1860 ~ 1919년): 60세

조민희(1859 ~ 1931년): 73세

조중응(1860 ~ 1919년): 60세

 

→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해당하는 이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호화로운 생활을 했고, 비교적 오래 살았으며, 1945년 해방되기 전에 전부 사망했기 때문에 본인들은 죽을 때까지 편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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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거지악, 삼불거, 삼종지도, 오불취 뜻과 유래

칠거지악, 삼불거, 삼종지도, 오불취 뜻과 유래

 

칠거지악, 삼불거, 삼종지도, 오불취

■ 칠거지악(七去之惡)

칠거지악이란 중국이나 한국 등 유교문화권에서 남편이 아내를 쫓아낼 수 있는 일곱 가지 조건을 이르는 말이며, 중국에서 유래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유교적 전통사회의 이혼사유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조강지처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었으므로 정당한 이유 없이 아내를 쫓아낼 수 없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서는 일반적으로는 이혼이 제한되어 있었으나 아내가 칠거지악에 해당하면 아내를 내쫓을 수 있었다. 칠거지악과 그 밖에 아래에서 설명할 내용들의 상세한 내용은 공자가어(孔子家語), 대대례기(大戴禮記) 등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칠거지악(七去之惡)

① 불순구고(不順舅姑):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여자

② 무자(無子): 아들을 낳지 못한 여자

③ 음행(淫行): 행실이 음탕한 여자

④ 질투(嫉妬): 질투하는 여자

⑤ 악질(惡疾): 나쁜 질병이 있는 여자

⑥ 구설(口舌): 말이 지나치게 많은 여자

⑦ 도절(盜竊): 도둑질하는 여자

 

 

결국,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거나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행실이 음탕하거나 질투하거나 나쁜 병이 있거나, 말이 많거나 도둑질을 하는 여자는 언제든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몇 가지는 지금의 기준으로도 범죄가 되거나 이혼을 결심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몇 가지는 지금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도 있다. 이는 봉건적 가족제도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칠거지악

■ 삼불거(三不去)

삼불거란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잘못을 저지른 아내라고 해도 남편이 쫓아낼 수 없는 3가지 경우로 자신의 아내가 이에 해당하면 이혼할 수 없었다.

 

▲ 삼불거(三不去)

① 여공경삼년상불거(與共更三年喪不去)

- 시부모의 삼년상을 함께 치른 경우

② 전빈천후부귀불거(前貧賤後富貴不去)

- 전에 가난했다가 나중에 부자가 된 경우

③ 유소취무소귀불거(有所取無所歸不去)

- 쫓아낸 후에 돌아갈 곳이 없는 경우

 

위의 삼불거에 해당하는 경우, 남편이 쫓아내는 경우에는 이에 따른 처벌을 받았고, 이혼을 한 후라고 해도 다시 결합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 이처럼 삼불거는 칠거지악으로 인한 이혼의 남용을 막고 어느 정도 아내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 나중에는 칠거(七去) 중에 무자(無子)와 질투(嫉妬)를 이혼사유에서 삭제하여 오거(五去)로, 삼불거(三不去) 중에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이혼을 금지하는 항목을 추가하여 사불거(四不去가 되어 오출사불거(五出四不去)가 생기기도 했다.

삼불거

■ 삼종지도(三從之道)

삼종지도란 유교 문화권에서 여자가 따라야 할 3가지 도리를 말한다. 이는, 고대사회에서는 여자는 남자에게 평생 복종하고, 종속되어 살아야 했던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삼종지덕(三從之德), 삼종지의(三從之義), 삼종지례(三從之禮)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 삼종지도(三從之道)

① 재가종부(在家從父)집에 있을 때는 아버지를 따른다.

② 적인종부(適人從夫)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른다.

③ 부사종자(夫死從子):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른다.

삼종지도

■ 오불취(五不取)

오불취란 유교 문화권에서 아내로 삼을 수 없는 5가지 경우를 말한다.

 

 

▲ 오불취(五不取)

① 역가자불취(逆家子不取) - 역적 집안의 딸

② 란가자불취(亂家子不取) - 음란한 집안의 딸

③ 세유형인불취(世有刑人不取) - 대대로 형벌을 받은 집안의 딸

④ 세유악질불취(世有惡疾不取) - 대대로 나쁜 병이 있는 집안의 딸

⑤ 상부장자불취(喪父長子不取) - 아버지가 없는 집의 장녀

 

※오불취의 경우, 아내로 삼을 수 없는 5가지 경우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남편으로 삼을 수 없는 5가지 경우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오불취

유교사회의 여성 위치

고려 말부터 우리 생활에 뿌리 깊이 박히게 된 유교 문화권에서 남자와 여자의 위치는 확연히 달랐다. 당시 유교사회를 지탱하고 이끌어 나가기 위한 필연적인 조치였다고도 볼 수도 있겠으나 여성으로서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집안에 유전적인 희귀 질환이 있어 유전이 걱정되거나 정치적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역적 집안과의 결혼 같은 것은 오늘날의 시각에서도 어느 정도 납득을 할 수도 있고, 결혼을 망설일 만한 이유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러한 것들은 여성의 인권이 많이 상승한 지금도 어느 정도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영향을 주고 있을 수도 있다. 이 밖에도 남녀차별과 관련한 사자성어나 유교사회에서 남녀의 위치를 엿볼 수 있는 단어들도 많다. 마지막으로 관련 단어들을 살펴보며 글을 마친다.

 

 

※참고. 남녀차별과 관련한 사자성어들

부창부수(夫唱婦隨)

남편은 주장하고 아내는 이에 따른다.

 

여필종부(女必從夫)

아내는 반드시 남편의 뜻을 따라야한다.

 

남존여비(男尊女卑)

남자는 높고 귀하게 여기고 여자는 낮고 천하게 여긴다.

 

개가금지(改嫁禁止)

여성이 이혼하거나 남편이 죽은 후에 재혼을 법으로 막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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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미국 대통령 영어로 Historical American Presidents

역대 미국 대통령 영어로


Historical American Presidents


오늘은 미국 역대 대통령 이름과, 임기, 그리고 그 대통령이 속한 당을 포스팅 하려고 합니다.


I am going to talk about historical American presidents' names, tenure, and what party the president is from.


미국 대통령 이미지


1. 조지 워싱턴 (1789. 4. 30 ~1797. 3. 4) 무소속


George Washington (April 30, 1789 ~ March 4, 1797) Independent party


2. 존 애덤스 (1797. 3. 4 ~ 1801. 3. 4) 연방당


John Adams (March 4, 1797 ~ March 4, 1801) Federalist Party


3. 토마스 제퍼슨 (1801. 3. 4 ~ 1809. 3. 4)  민주 공화당


Thomas Jefferson (March 4, 1801 ~ March 4, 1809) Democratic-Republican Party


4. 제임스 매디슨 (1809. 3. 4 ~ 1817. 3. 4) 민주 공화당


James Madison (March 4, 1809 ~ March 4, 1817) Democratic-Republican Party


5. 제임스 먼로 (1817. 3. 4 ~ 1825. 3. 4) 민주 공화당


James Monroe (March 4, 1817 ~ March 4, 1825) Democratic-Republican Party


6. 존 퀸시 애덤스 (1825. 3. 4 ~ 1829. 3. 4) 민주 공화당


John Quincy Adams (March 4, 1825 ~ March 4, 1829) Democratic-Republican Party


7. 앤드류 잭슨 (1829. 3. 4 ~ 1837. 3. 4) 민주당


Andrew Jackson (March 4, 1829 ~ March 4, 1837) Democratic Party




8. 마틴 밴 뷰런 (1837. 3. 4 ~ 1841. 3. 4) 민주당


Martin Van Buren (March 4, 1837 ~ March 4, 1841) Democratic Party


9. 윌리엄 헨리 해리슨 (1841. 3. 4 ~ 1841. 4. 4) 휘그당, *재임 중 사망함.


William Henry Harrison (March 4, 1841 ~ April 4, 1841) Whig Party * Passed away during his tenure.


10. 존 타일러 (1841. 4. 4 ~ 1845. 3. 4) 휘그당 → 무소속 


John Tyler (April 4, 1841 ~ March 4, 1845) Whig Party → Independent Pary


11. 제임스 K. 포크 (1845. 3. 4 ~ 1849. 3. 4) 민주당


James Knox Polk (March 4, 1845 ~ March 4, 1849) Democratic Party


12. 재커리 테일러 (1849. 3. 4 ~ 1850. 7. 9) 휘그당 *재임 중 사망함.


Zachary Taylor (March 4, 1849 ~ July 9, 1850) Whig Party * Passed away during his tenure.


13. 밀러드 필모어 (1850. 7. 9 ~ 1853. 3. 4) 휘그당


Millard Fillmore (July 9, 1850 ~ March 4, 1853) Whig Party


14. 프랭클린 피어스 (1853. 3. 4 ~ 1857. 3. 4) 민주당


Franklin Pierce (March 4, 1853 ~ March 4, 1857) Democratic Party




15. 제임스 뷰캐넌 (1857. 3. 4 ~ 1861. 3. 4) 민주당


James Buchanan (March 4, 1857 ~ March 4, 1861) Democratic Party


16. 아브라함 링컨 (1861. 3. 4 ~ 1865. 4. 15) 공화당 → 국민 연합당 *임기 중 암살 당함


Abraham Lincoln (March 4, 1861 ~ April 15, 1865) Republican Party → Kansallinen Kokoomus * assassinated during his tenure.


17. 앤드류 존슨 (1865. 4. 15 ~ 1869. 3. 4) 민주당, 민주 연합당


Andrew Johnson (April 15, 1865 ~ March 4, 1869) Democratic Party, Kansallinen Kokoomus


18. 율리시스 심슨 그랜트 (1869. 3. 4 ~ 1877. 3. 4) 공화당


Ulysses Simpson Grant (March 4, 1869 ~ March 4, 1877) Republican Party


19. 루더포드 버처드 헤이스 (1877. 3. 4 ~ 1881. 3. 4) 공화당


Rutherford Birchard Hayes (March 4, 1877 ~ March 4, 1881) Republican Party


20. 제임스 아브람 가필드 (1881. 3. 4 ~ 1881. 9. 19) *임기 중 암살


James Abram Garfield (March 4, 1881 ~ September 19, 1881)  *assassinated during his tenure.


21. 체스터 알랜 아서 (1881. 9. 19 ~ 1885. 3. 4) 공화당


Chester Alan Arthur (September 19, 1881 ~ March 4, 1885) Republican Party




22. 스테판 그로버 클리브랜드 (1885. 3. 4 ~ 1889. 3. 4) 민주당


Stephen Grover Cleveland (March 4, 1885 ~ March 4, 1889) Democratic Party


23. 벤자민 해리슨 (1889. 3. 4 ~ 1893. 3. 4) 공화당


Benjamin Harrison VI (March 4, 1889 ~ March 4, 1893) Republican Party


24. 스테판 그로버 클리버랜드 (1893. 3. 4 ~ 1897. 3. 4) 민주당


Stephen Grover Cleveland (March 4, 1893 ~ March 4, 1897) Democratic Party


25. 윌리엄 매킨리 (1897. 3. 4 ~ 1901. 9. 14) 공화당 * 임기 중 암살


William McKinley, Jr. (March 4, 1897 ~ September 14, 1901) Republican Party * assassinated during his tenure.


26. 티어도어 루즈벨트 (1901. 9. 14 ~ 1909. 3. 4) 공화당


Theodore Roosevelt (September 14, 1901 ~ March 4, 1909) Republican Party


27.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1909. 3. 4 ~ 1913. 3. 4) 공화당


William Howard Taft (March 4, 1909 ~ March 4, 1913) Republican Party


28. 토마스 우드로 윌슨 (1913. 3. 4 ~ 1921. 3. 4) 민주당


Thomas Woodrow Wilson (March 4, 1913 ~ March 4, 1921) Democratic Party




29. 워렌 가맬리엘 하딩 (1921. 3. 4 ~ 1923. 8. 2) 공화당 *임기 중 사망


Warren Gamaliel Harding (March 4, 1921 ~ August 2, 1923) Republican Party *Passed away during his tenure


30. 존 칼빈 쿨리지 (1923. 8. 2 ~ 1929. 3. 4) 공화당


John Calvin Coolidge, Jr. (August 2, 1923 ~ March 4, 1929) Republican Party


31. 허버트 클락 후버 (1929. 3. 4 ~ 1933. 3. 4) 공화당


Herbert Clark Hoover (March 4, 1929 ~ March 4, 1933) Republican Party


32. 프랭클린 딜라노 루즈벨트 (1933. 3. 4 ~ 1945. 4. 12) 민주당 *임기 중 사망


Fraanklin Delano Roosevelt (March 4, 1933 ~ April 12, 1945) Democratic Party *Passed away during his tenure 


33. 해리 S. 트루먼 (1945. 4. 12 ~ 1953. 1. 20) 민주당


Harry S. Truman (April 12, 1945 ~ January 20, 1953) Democratic Party


34.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 (1953. 1. 20 ~ 1961. 1. 20) 공화당 *3 선 금지법 최초 적용


Dwight David Eisenhower (January 20, 1953 ~ January 20, 1961) Rupublican Party *The first President who was applied by Prohibition three terms consecutively


35. 존 F. 케네디 (1961. 1. 20 ~1963. 11. 22) 민주당 *임기 중 암살 당함


John Fitzgerald Kennedy (January 20, 1961 ~ November 22, 1961) Democratic Pary *Assassinated during his tenure




36. 린든 B. 존슨 (1963. 11. 22 ~ 1969. 1. 20) 민주당


Lyndon Baisnes Johnson (November 22, 1963 ~ January 20, 1969) Democratic Party


37. 리처드 밀하우스 닉슨 (1969. 1. 20 ~ 1974. 8. 9) 공화당 *사임


Richard Milhous Nixson (January 20, 1969 ~ August 9, 1974) Republican Pary *Resigned


38. 제럴드 루돌프 포드 (1974. 8. 9 ~ 1977. 1. 20) 공화당


Gerald Rudolph Ford, Jr. (August 9, 1974 ~ January 20, 1977) Republican Party


39. 지미 카터 (1977. 1. 20 ~ 1981. 1. 20) 민주당


Jimmy Carter, Jr. (Junuary 20, 1977 ~ January 20, 1981) Democratic Party


40. 로날드 레이건 (1981. 1. 20 ~ 1989. 1. 20) 공화당


Ronald Wilson Reagan (January 20, 1981 ~ January 20, 1989) Republican Party


41. 조지 H. W. 부시 (1989. 1. 20 ~ 1993. 1. 20) 공화당


George Herbert Walker Bush (Jaunary 20, 1989 ~ January 20, 1993) Republican Party


42. 빌 클린턴 (1993. 1. 20 ~ 2001. 1. 20) 민주당


Bill Jefferson Clinton (January 20, 1993 ~ January 20, 2001) Democratic Party




43. 조지 W. 부시 (2001. 1. 20 ~ 2009. 1. 20) 공화당


George Walker Bush (January 20, 2001 ~ January 20, 2009) Republican Party


44. 버락 오바마 (2009. 1. 20 ~ 2017. 1. 20) 민주당


Barack Hussein Obama Jr. (Jaunary 20, 2009 ~ January 20, 2017) Democratic Party


45. 도널드 트럼프 (2017. 1 . 20 ~ 현재 대통령) 공화당


Donald John Trump (January 20, 2017 ~ Now on going) Republican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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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언급된 인물들 소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언급된 인물들 소개


위인이라고 보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전혀 아닌 사람들도 있으나, 국민학교 시절부터 많이 불렀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언급된 인물들을 간단히 소개하려고 합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이미지


1. 단군 - 고조선 건국


2. 동명왕 - 부여의 시조, 고구려를 세운 주몽왕과 동일 인물로 보는 설이 있음


3. 온조왕 - 고구려 왕자이자 소서노의 둘째 아들로 백제를 건국한 인물


4. 박혁거세 - 신라의 시조이며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5. 광개토대왕 - 고구려 19대 대왕이며 전쟁에서 항상 승리하여 주변 나라들을 굴복 시킨 정복자. 


6. 김이사부 - 신라 시대의 명장으로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던 중고기 시대 주변 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대가야를 멸망시킨 인물.


7. 백결선생 - 삼국 시대의 몇 안되는 예술가로, 거문고의 명인이었다. 가난해서 항상 꿰멘 옷을 입었으며, 대악 (방아 타령)을 작곡한 사람이다.


8. 의자왕 - 백제의 마지막 왕. 삼천 궁녀를 거느리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다 백제 멸망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승자의 입장 (신라, 당) 에서 쓴 역사일 가능성이 많으며, 재위 중반 까지는 신라를 몰아붙이면 적극적인 정복 전쟁을 벌이 왕이며, 백제 역사상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긴 왕이기도 하다.


9. 계백 - 황산벌에서 전사한 백제의 마지막 명장. 적국인 신라의 화랑인 관창을 보고 어린 소년이 뛰어나다며 한 번 풀어준 적이 있는 대인배.


10. 관창 - 신라의 화랑으로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백제 계백 장군과 맞서 싸운 인물로, 계백 장군이 한 번 풀어주었으나 두 번째 잡혔을 때는 목이 베인다.


11. 김유신 - 멸망한 가야의 왕족 출신으로, 신라 장군으로 진평왕, 선덕여왕, 진덕여왕, 태종 무열왕, 문무왕, 이렇게 5 명의 신라 왕을 섬기며, 크고 작은 전쟁에서 이기며 통일 신라를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여러 외교적 위기 속에서 신라를 구하기도 한 신라의 영웅.


12. 문무왕 - 한반도 최초로 삼국을 통일한 통일 신라의 군주이자 뛰어난 전술가.


13. 원효 대사 -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 해골물을 마시고 "모든 일은 마음 먹기 달렸다" 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유명한 삼국 시대 말엽의 신라의 고승이자 철학자.


14. 혜초 - 통일신라 시대의 승려이자 인도로 가서 승려 금강지의 제자가 된 후, 중앙아시아 지역 및 페르시아 지역까지 여행한 후 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인물.




15. 장보고 - 통일신라 시대의 군인이자 호족으로 당나라에서 벼슬을 한 인물로, 동아시아 해상에서 국제적으로 무역과 상업, 또한 군사력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 통일신라의 영웅.


16. 대조영 - 발해를 건국한 인물로 발해는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내려와 거란, 말갈족을 흡수하여 만든 나라이다.


17. 강감찬 - 고려 시대의 신하로 거란족을 퇴치한 귀주대첩으로 유명한 인물. 


18. 서희 - 고려 문신으로 외교로 유명하다. 거란의 소손녕과의 기 싸움에서 이긴 외교 담판으로 잘 알려진 인물.


19. 정중부 - 고려의 무신으로 무신들에 대한 차별에 반발하여 무신정변을 일으켰으며, 무신정권 시대의 두 번째 집권자이자 키가 크고 외모가 수려한 인물. 


20. 최무선 - 고려말과 조선초의 장수로 화포를 최초로 개발한 인물로 왜구들을 화포로 무찌른 진포해전으로 유명.


21. 죽림칠현 (산도, 왕융, 유영, 완적, 완함, 혜강, 상수) -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에 정치와 속세에 등을 돌리고 언제나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긴 일곱명의 인물들. 그들의 중심 인물은 혜강과 완적 두 사람이었다. 전통적 유교 가치관에 반하는 행동을 많이 했으며, 7명의 선비가 몰려 다니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이들은 중국인들이며 한국을 빛낸 인물에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22. 김부식 - 삼국사기를 기록한 고려시대 중기의 문신이며, 무신정변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 문신 권력자로, 묘청의 난을 진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23. 지눌국사 - 고려의 승려로 불교 종파들을 통합하여 조계종을 창시하였다. 


24. 의천 - 고려의 승려로 원래 왕자였다. 최초의 본격적인 화폐 유통을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불교를 천태종으로 통합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25. 이종무 - 조선 세종대왕 시대 대마도를 정벌한 인물.


26. 정몽주 -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자 유능한 인재. 이방원의 하여가에 단심가로 회답하여 고려에 대한 일편단심을 전했다. 결국 이방원에게 선지교에서 살해된다.


27. 문익점 - 고려 말의 유학자로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밀수해 조선 시대 의복에 큰 변화를 일으킨 인물.




28. 최충 - 고려 시대의 문신으로 9재 학당을 창립해 쇠퇴하고 있던 국립 교육기관인 국자감을 대신하고자 하였으나, 후에 붕당정치의 씨앗이 되기도 함.


29. 일연 - 고려시대 승려로 원효대사와 동향이며, 삼국유사를 집필했다.


30. 최영 - 고려 말 문신, 최후의 명장이자 충신. 청백리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개혁의 걸림돌이 되어 유배되고 고문 받고 처형 당했다.


31. 황희 - 고려 말 조선 초 시대의 문신으로 24년간 정승 자리에 있었고, 그렇게 한데는 세종대왕의 요청이 있었다. 세종대왕과 함께 태평성대를 열었고 존경 받는 유능한 정치가였다. 그러나 뇌물을 좋아하여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몇 차례 탄핵 위기를 겪었다.


32. 맹사성 - 황희와 함께 조선 시대 대표적 명재상. 청렴 결백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 음악의 기초를 닦았다. 강호사시가를 만들기도 했다.


33. 장영실 - 조선 세종대왕 시대에 활약한 과학자이자 기술자. 간의, 앙부일구, 옥루, 자격루, 혼천의, 일성정시의, 그리구 측우기를 발명한 인물.


34. 신숙주 - 조선시대의 정치가, 외교관. 세조가 왕이 될 때 계유정난과 단종의 퇴위에 적극 참여하여 많은 지탄을 받은 인물. 그러나 국조보감, 동국통감 집필에 참여한 학자 중 한 사람이며, 농산축목서를 집필. 여진족 징벌과 일본 지도를 제작한 업적이 있다.


35. 한명회 - 조선 시대의 권신. 수양대군의 참모로 총애를 받아, 두 왕의 장인이 되는 등 엄청난 권력을 누림. 하지만 모략가로서 매우 뛰어난 면모를 보임.


36. 이율곡 - 신사임당의 아들이자 조선 시대의 대표적 천재로 알려져 있다. 십만양병설을 주장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음. 오천원 지폐 모델.


37. 이퇴계 - 조선 시대 유학자. 천원 지폐의 모델. 대 학자로서 존경 받고 있으며, 조선 시대에 드문 좋은 남편이자 부부 관계에 대한 많은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38. 신사임당 - 조선 시대 예술가이자 지식 여성.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며, 오만원 지폐 모델이기도 함. 글쓰기와 그림 실력이 탁월했고,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으며, 학문적으로도 높이 평가 받고 있다.


39. 곽재우 - 조선 시대 성리학자이자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으로 활약한 의병장.


40. 조현 - 조선 시대의 문신 출신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장.


41. 김시민 - 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최고의 명장. 진주 대첩으로 화려하게 활약했으며 장렬히 전사.


42. 이순신 - 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임진왜란 때의 영웅. 전술에 밝고 강직한 충신. 거북선을 제작하여 왜구를 무찔렀던 구국영웅. 전쟁 중 기록한 난중일기로 유명하며 한산도 대첩이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해전들을 매우 열세한 아군의 군대로 적군을 박살낸 인물. 




43. 태정태세문단세 -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등 조선의 왕을 가리키는 말.


44. 사육신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실패하여 죽은 사람들.


45. 생육신 (김시습, 성담수, 원호, 이맹전, 조려, 남효온 or 권절) - 세조가 반정을 일으키자 속세를 떠나 벼슬을 버리고 미친척 하거나 장애가 있는 척 하며 단종을 추모한 인물들.


46. 논개 - 조선시대 진주 출신 관기로 알려져 있다. 황진이와 더불어 유명한 기생. 왜군이 침략했을 때 손가락에 반지 10개를 끼고 적장을 꼭 안고 절벽으로 떨어짐.


47. 권율 - 조선 시대 문신이자 무관으로 임진왜란 때 행주 산성에서 행주대첩으로 유명.


48. 홍길동 - 도술을 부릴 수 있는 허균의 홍길동전 주인공. 부패한 관리들의 재물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분신술로 유명. 서얼 출신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해 한이 많음. 놀랍게도 실제 홍길동이 존재 했는데, 그는 인맥을 잘 활용한 머리 좋은 도적으로, 서얼이라는 신분의 한계 때문에 도적으로 빠진 인물이라고 한다.


49. 임꺽정 - 조선시대 백정 출신 도적으로, 유명한 사극 여인천하의 배경인 문정왕후와 정난정이 섭정하던 시대에 활약한 인물. 관군과 싸워 수차례 이겼으며, 반란을 일으켜 조선 정부를 위태롭게 하기도 했던 뛰어난 인물.


50. 삼학사 (홍익한, 윤집, 오달제) - 조선 시대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결사항전을 주장하다 끌려가 사형당한 인물들. 


51. 박문수 - 조선 시대의 문관으로, 백성을 대변하여 바른 말을 잘 하고, 가끔씩 선을 넘기도 해서 많은 지탄을 받았는데, 영조가 아껴서 감싸준 인물. 대표적 암행어사로 알려져 있다.


52. 한석봉 - 조선시대 3 대 명필 중 한명. 어둠 속에서 떡을 써는 어머니와 글씨로 대결을 벌인 일화로 유명. 


53. 단원 김홍도 - 조선 후기 대표적 화가로 풍속화로 유명하며 다양한 그림들을 남겼다.


54. 김삿갓 (김병연) -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갓을 쓰고 방랑하며 돌아다녔다. 김병연은 안동 김씨로, 할아버지 김익순이 왕을 속인 죄로 처형 당하고, 아버지도 화병으로 돌아가셔서 몰락한 양반의 후손이었다. 그런 이유로 평생 방랑하며 살았다는 설이 있다.


55. 김정호 - 조선 말기의 지리학자이자 대동여지도를 그린 인물.


56. 영조 - 조선의 21대 왕. 붕당정치의 폐단을 완화하기 위해 탕평책을 내는 등 정치적으로 밝은 인물이었으나,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인 냉혈한으로 알려져 있다. 또 83살까지 장수하고, 소식하며, 소박한 생활을 강조했던 왕이다. 그래서 여성들의 가체를 금하고 금주령을 내리는 등의 정치를 펴며, 태평성대를 이끈 왕이기도 하다.


57. 정조 - 조선시대 22대 왕. 영조와 함께 조선 최후의 태평성대를 연 왕이다. 학식이 매우 높아 신하들을 종종 기죽이기도 했다.


58. 정약용 - 조선의 문신. 뛰어난 실학자. 토지제도를 개혁하고 살인 사건을 해결, 법의학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00 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초기 천주교 신자로 유명하며 이 때문에 유배를 당하기도 한다.


59. 전봉준 - 녹두장군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후기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인물이다.


60. 김대건 -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부. 기독교를 박해했던 조선시대에 혹세무민 했다는 죄명을 얻고 순교 당함.




61. 황진이 - 조선 전기의 기생이자 논개와 함께 가장 유명한 명기로 알려져 있다. 시인이자 예술가, 사서삼경을 독파한 지식 여성이기도 함. 천마산의 지족선사를 파계 시키고, 벽계수를 무너뜨린 일화로 유명. 서경덕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자 감탄하며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배웠다고 함.


62. 홍경래 - 홍경래의 난을 일으킨 인물. 과거에 떨어진 후 세도정치 등의 비리와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여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


63. 김옥균 - 조선 말기 고종 때 대표적인 개화파로 프랑스식 급진적 개혁을 주장하며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 천하에 그침.


64. 안중근 - 대한제국 말기의 의병 지도자이자 계몽 운동가. 천주교 신자로 도마 안중근이라고 불리기도 함.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이토 히로부미의 10가지 죄악을 읊은 바 있다. 


65. 이완용 - 매국노의 끝판 왕. 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포함되었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이완용 이외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고종 강제 퇴위를 추진하며, 정미칠적에 포함되기도 하는 등 매국노 중의 매국노라고 볼 수 있다. 


66. 윤동주 - 일제 강점기의 항일 민족 시인. 독립운동가. 명시 별 헤는 밤으로 유명.


67. 지석영 - 조선 말기의 의사이자 국문학자. 종두법을 연구해 보급하려고 노력, 천연두 퇴치에 힘을 씀. 친일 논란이 있음.


68. 삼십삼인 - 3.1운동을 주도하며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33인으로,  국민들과 학생들이 '조선독립 만세' 라는 구호를 외치게 선동함.


89. 손병희 - 독립운동가, 동학농민운동 2차 봉기의 총 지휘자로 활약. 애국지사들이 세운 사립 학교를 인수해 교육 사업에 나서기도 했다.


70. 유관순 - 만세 운동에 참가한 대표적 인물로 일본군에게 잡혀 참혹하게 고문 받고 살해되었다.


71. 안창호 -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민족 실력 양성"을 내걸고 민족 계몸운동을 펼쳤다. 미국으로 건너가 흥사단을 설립했으며, 흥사단은 이후에 3.1운동. 수양동우회 사건 등의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72. 방정환 - 독립 운동가이자, 어린이 교육과 인권을 위해 노력한 사회운동가. 3.1운동에도 참여했으며, 어린이 문학서를 많이 집필했다.


73. 이수일과 심순애 - 흠... 한국을 빛낸 위인에 속하기 보다는 그 당시 국민 신파극 제목이자 주인공이였다. 김중배와 이수일 그리고 여주인공인 심순애가 벌이는 삼각관계 내용이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더냐" 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74. 김두한 - 일제강점기의 유명한 건달이며 한국 1세대 조폭 두목으로 나중에 국회의원까지 된 인물.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경험했던 인물이다. 독립 운동가 김좌진의 서자라 하여 장군의 아들로 불리며, 안재모씨가 떠오른다.


75. 이상 -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아방가드르 시인이자 소설가. 대표작 나비로 유명하다.


76. 이중섭 -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황소라는 작품으로 유명.


언급 되었던 인물들을 살펴보면 76명인 것 같지만, 33인, 태정태세문단세, 사육신 등과 같이 묶여서 나온 경우가 있으므로 다 세어보면 100명이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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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 연설 (Antonio’s Speech)

 [명 연설] 안토니우스 연설 (Antonio’s Speech)


*English Version is below


-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줄리우스 시저(The Tragedy of Julius Caesar) 중에서 -


이 작품은 매우 유명하여 역사적 사실보다 대중에게 더 친숙한 이야기가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필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상당수의 유명한 장면은 허구이며, 이 블로그에서 소개할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의 연설도 상당수의 내용이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로서 유명한 구절들이 많다.


안토니우스의 명연설 이미지


<안토니우스의 연설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친애하는 로마 시민 여러분, 제 말을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카이사르의 장례를 치르러 온 것일 뿐 그를 찬양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나쁜 일은 당사자가 죽은 후에도 회자되지만 좋은 일은 흔히 유골과 묻혀 사라지게 됩니다. 카이사르의 경우도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귀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야심을 품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중대한 과실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제 카이사르는 이에 답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브루투스를 비롯하여 이 일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카이사르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추도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카이사르는 제게 있어서 신의 있고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브루투스는 그가 야심을 품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브루투스는 훌륭한 분입니다. 카이사르는 수많은 포로들을 로마로 데려와서 그들을 팔아서 받은 몸값을 국고로 충당했습니다. 카이사르의 이러한 행동이 야심에서 비롯되었을까요? 가난한 자들이 울고 있었을 때도 카이사르는 함께 울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야심에서 비롯되었을까요? 그러나 브루투스는 그가 야심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브루투스는 훌륭한 분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루퍼칼 축제일에 보셨을 것입니다. 제가 그에게 왕관을 세 번이나 바쳤지만 그는 매 번 거절했습니다. 이것이 야심입니까? 그러나 브루투스는 말합니다. 그가 야심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저는 브루투스가 말한 것에 대해 반박하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예전에 카이사르를 사랑했었고, 그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죽었음에도 그를 위해 애도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사람들은 야수 같은 짐승들이 되어버렸고 그를 사랑했던 이유를 잃어버렸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카이사르에 대한 그리움을 가눌 길이 없어 잠시 애도의 마음을 표한 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시민1]


안토니우스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소.


[시민2]


이 사태를 냉정히 살펴보면 카이사르는 분명 큰 잘못을 저질렀소.


[시민3]


정말 그런 것입니까, 나으리들? 어쩐지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시민4]


안토니우스의 말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왕관을 받지 않았다고 했소. 그러면 카이사르가 야심이 없었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소?


[시민1]


그것이 사실이라면 안토니우스의 말을 따라야 하오.


[시민2]


정말 불쌍하게 되었소. 그의 눈은 빨갛게 충혈 될 만큼 슬픔에 빠졌소.


[시민3]


로마에서 안토니우스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없을 것이오.


[시민4]


이제 그를 주목합시다. 그가 다시 말하기 시작하는군요.


[안토니우스]


어제만 하더라도 카이사르의 이름은 온 세상을 전율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시신 앞에 거지조차도 예를 올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만약 제가 여러분의 마음을 흔들어 반란과 폭동이 일어나게 한다면 저는 브루투스에게도, 카시우스에게도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꼴입니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여러분 모두가 아시는 것처럼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죽은 자를 비난하고 저 자신과 여러분이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 낫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카이사르가 서명한 유언장가 있습니다. 저는 유언장을 벽장에서 발견했습니다. 마땅히 유서를 공개해야 하지만 저는 유언장을 읽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유언장의 내용을 알게 된다면 카이사르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상처에 입맞춤을 하고 손수건을 그의 신성한 피에 적시고, 한 올의 머리카락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애쓸 것이며 그것을 자자손손 대대로 전할 귀한 유산으로 삼을 것입니다.


[시민4]


유언장의 내용을 들어봅시다. 안토니우스, 유언장을 읽으시오.


[모두]


유언장! 유언장! 유언장의 내용을 들어봅시다.


[안토니우스]


친애하는 여러분, 저는 유언장을 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카이사르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르는 것이 낫습니다. 여러분은 나무나 돌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의 유언장을 듣게 된다면 격분하게 될 뿐 아니라 이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카이사르의 상속인이라는 것을 모르시는 편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시민4]


안토니우스! 유언장을 읽으시오 우리는 그 내용을 듣고 싶소. 무엇을 주저하는 것이오! 카이사르의 유언장를 읽으시오.


[안토니우스]


여러분 진정하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유언장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한 제 실수입니다. 칼을 들고 카이사르를 시해한 훌륭한 사람들을 욕되게 할까 두렵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시민4]


훌륭한 분들이라니 그들은 반역자들이다. 


[모두]


유언장!


[시민2]


그들은 악당들이고 살인자들이오. 유언장! 유언장을 읽으시오.


[안토니우스]


여러분이 저에게 유언장을 읽을 것을 강요하신다면 유언장을 읽을 것입니다. 그러면 카이사르의 시신을 중심으로 원모양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유언장을 남긴 그 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내려갈까요? 제가 내려가도 좋겠습니까?


[몇몇의 시민들]


내려오시오.


[시민2]


내려오시오.


[시민3]


자리에서 내려오시오.


(안토니우스가 내려온다.)


[시민4]


동그랗게 모이시오.


[시민1]


시신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모이시오.


[시민2]


가장 훌륭한 안토니우스를 위해 공간을 마련해주시오.


[안토니우스]


여러분 너무 밀지 마시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몇몇의 시민들]


뒤로 물러나시오. 공간을 확보합시다. 뒤로 물러서자.


[안토니우스]


슬픔을 참기 힘든 분들은 이제 눈물을 흘리셔도 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 망토를 알고 있으실 것입니다. 카이사르는 누르베이 족을 토벌했던 여름날 저녁 그의 진지에서 처음으로 그 망토를 입었습니다. 보십시오. 이것은 카시우스의 칼에 찔린 상처입니다. 질투심이 많은 카스카가 찌른 상처를 보십시오. 이 상처는 가장 사랑 받았던 브루투스가 찌른 상처입니다. 브루투스가 자신의 가증스러운 칼을 뽑아내자 카이사르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문밖까지 흘러나왔습니다. 브루투스가 얼마나 잔인무도한 행위를 벌였는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카이사르는 브루투스를 극진히 보살펴 주었지만 가장 잔인 무도한 패륜이 자행 되었습니다. 훌륭한 카이사르는 반역자들의 무기보다도 그를 찌르는 모습과 배은망덕한 모습에 산산조각이 났고 그의 강함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동상 아래서 자신의 망토에 얼굴이 가려진 채 목숨을 잃었던 것입니다. 


로마 시민 여러분,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결국,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당한 불행인 것입니다. 피로 물든 반역 행위가 우리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오, 여러분, 이제 애도합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 진정한 눈물입니다. 찢어지고 피로 물든 그의 옷을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시민1]


아, 끔찍한 광경이다!


[시민2]


오, 훌륭한 카이사르여.


[시민3]


아, 정말 비참한 날이다.


[시민4]


아, 반역자들! 악당들이다.


[시민1]


피바다가 따로 없구나.


[시민2]


우리가 복수할 것이오.


[모두]


복수하자. 찾아서 불태우자. 죽이자. 베어버리자. 한 놈도 남김없이 없애버리자


[안토니우스]


로마 시민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시민1]


다들 진정하시오. 훌륭한 안토니우스의 말을 들어봅시다. 


[시민2]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따르고 안토니우스와 함께 죽을 것이오.


[안토니우스]


친애하는 여러분! 요동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일을 벌인 사람들은 존경 받는 사람들입니다. 어떠한 사적인 원한을 품고 그런 것을 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분명 여러분에게 해명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을 동요 시키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브루투스와 같은 웅변가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제 친구가 바로 그 점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분들도 그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카이사르에 대한 추도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피를 용솟음 치게 할 만큼의 재치도 없고 말주변도 없고, 행동도 어눌하며 표현력도 형편없습니다. 단지 솔직하게 말씀드릴 뿐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 전달해드리면서 곳곳에 상처가 나 있는 카이사르의 시신을 여러분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제가 브루투스처럼 연설을 잘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카이사르의 모든 상처를 어루만져 주어 로마의 돌멩이들이 일어나 폭동을 일으키게 하고 싶습니다.


[모두]


우리가 폭동을 일으킬 것이오. 


[시민1]


우리가 부르투스의 집에 불을 지를 것이오


[시민3]


자, 반역자들을 찾으러 가자


[안토니우스]


로마시민 여러분 제 말을 경청해 주십시오. 아직 드릴 말씀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조용! 안토니우스의 말을 들으시오. 가장 훌륭한 안토니우스.


[안토니우스]


여러분, 카이사르에 대하여 알아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는 여러분의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 그러나 여러분은 아직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그 이유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언급했던 유언장을 잊고 있었습니다. 


[모두]


유언장! 이제 유언장의 내용을 들어 봅시다.


[안토니우스]


여기에 카이사르가 서명한  유언장이 있습니다. 그 유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카이사르는 모든 로마 시민에게 각각 75 드라크마씩 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시민2]


가장 훌륭한 카이사르. 그를 죽인 자에게 복수할 것이오.


[시민3]


위대한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진정하시고 계속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모두]


모두 조용!


[안토니우스]


게다가 카이사르는 사유지인 테베레 강가의 정원과 새로 조성한 과수원들도 모두 여러분에게 주어 여러분의 자손들이 대대손손이 휴양 장소로서 산책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카이사르입니다. 우리가 이런 영웅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겠습니까?


2018/12/16 -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 - 브루투스 연설과 안토니우스 연설 (Brutus’s Speech)


안토니우스 연설을 목소리와 음악과 함께 유튜브 영상으로 보실 분은 아래 그림에 유튜브 링크를 올려 두었으니 아래 그림을 클릭해 주세요. 

안토니우스의 연설 유튜브 영상


<Antonio's Speech>


[Antony]


Friends, Romans, countrymen, lend me your ears; I come to bury Caesar, not to praise him. The evil that men do lives after them; The good is oft interred with their bones; So let it be with Caesar. The noble Brutus Hath told you Caesar was ambitious: If it were so, it was a grievous fault, And grievously hath Caesar answer'd it.

      

Here, under leave of Brutus and the rest - For Brutus is an honourable man; So are they all, all honourable men - Come I to speak in Caesar's funeral. 


He was my friend, faithful and just to me: But Brutus says he was ambitious; And Brutus is an honourable man. He hath brought many captives home to Rome Whose ransoms did the general coffers fill: Did this in Caesar seem ambitious? When that the poor have cried, Caesar hath wept: Ambition should be made of sterner stuff: Yet Brutus says he was ambitious; And Brutus is an honourable man. You all did see that on the Lupercal I thrice presented him a kingly crown, Which he did thrice refuse: was this ambition? Yet Brutus says he was ambitious; And, sure, he is an honourable man. 




I speak not to disprove what Brutus spoke, But here I am to speak what I do know. You all did love him once, not without cause: What cause withholds you then, to mourn for him? O judgment! thou art fled to brutish beasts, And men have lost their reason. Bear with me; My heart is in the coffin there with Caesar, And I must pause till it come back to me.


[First Citizen]


Methinks there is much reason in his sayings.


[Second Citizen]

      

If thou consider rightly of the matter, Caesar has had great wrong.


[Third Citizen]

      

Has he, masters? I fear there will a worse come in his place.


[Fourth Citizen]

      

Mark'd ye his words? He would not take the crown; Therefore 'tis certain he was not ambitious.


[First Citizen]

      

If it be found so, some will dear abide it.


[Second Citizen]

      

Poor soul! his eyes are red as fire with weeping.


[Third Citizen]

      

There's not a nobler man in Rome than Antony.


[Fourth Citizen]

      

Now mark him, he begins again to speak.


[Antony]

      

But yesterday the word of Caesar might Have stood against the world; now lies he there. And none so poor to do him reverence. 

      

O masters, if I were disposed to stir Your hearts and minds to mutiny and rage, I should do Brutus wrong, and Cassius wrong, Who, you all know, are honourable men: I will not do them wrong; I rather choose To wrong the dead, to wrong myself and you, Than I will wrong such honourable men. 

      



But here's a parchment with the seal of Caesar; I found it in his closet, 'tis his will: Let but the commons hear this testament - Which, pardon me, I do not mean to read - And they would go and kiss dead Caesar's wounds And dip their napkins in his sacred blood, Yea, beg a hair of him for memory, And, dying, mention it within their wills, Bequeathing it as a rich legacy Unto their issue.


[Fourth Citizen]

      

We'll hear the will: read it, Mark Antony.


[All]

      

The will, the will! we will hear Caesar's will.


[Antony]

      

Have patience, gentle friends, I must not read it; It is not meet you know how Caesar loved you. You are not wood, you are not stones, but men; And, being men, bearing the will of Caesar, It will inflame you, it will make you mad: 'Tis good you know not that you are his heirs; For, if you should, O, what would come of it!


[Fourth Citizen]

      

Read the will; we'll hear it, Antony; You shall read us the will, Caesar's will.


[Antony]

      

Will you be patient? will you stay awhile? I have o'ershot myself to tell you of it: I fear I wrong the honourable men Whose daggers have stabb'd Caesar; I do fear it.


[Fourth Citizen]

      

They were traitors: honourable men!


[All]

      

The will! the testament!


[Second Citizen]

      

They were villains, murderers: the will! read the will.


[Antony]

      

You will compel me, then, to read the will? Then make a ring about the corpse of Caesar, And let me show you him that made the will. Shall I descend? and will you give me leave?


[Several Citizens]

      

Come down.


[Second Citizen]

      

Descend.


[Third Citizen]

      

You shall have leave.


ANTONY comes down.


[Fourth Citizen]

      

A ring; stand round.


[First Citizen]


Stand from the hearse, stand from the body.


[Second Citizen]

      

Room for Antony, most noble Antony.


[Antony]

      

Nay, press not so upon me; stand far off.


[Several Citizens]

      

Stand back; room; bear back.


[Antony]

      

If you have tears, prepare to shed them now. You all do know this mantle: I remember The first time ever Caesar put it on; 'Twas on a summer's evening, in his tent, That day he overcame the Nervii: Look, in this place ran Cassius' dagger through: See what a rent the envious Casca made: Through this the well-beloved Brutus stabb'd; And as he pluck'd his cursed steel away, Mark how the blood of Caesar follow'd it, As rushing out of doors, to be resolved If Brutus so unkindly knock'd, or no; For Brutus, as you know, was Caesar's angel: Judge, O you gods, how dearly Caesar loved him!

      

This was the most unkindest cut of all; For when the noble Caesar saw him stab, Ingratitude, more strong than traitors' arms, Quite vanquish'd him: then burst his mighty heart; And, in his mantle muffling up his face, Even at the base of Pompey's statua, Which all the while ran blood, great Caesar fell.

      

O, what a fall was there, my countrymen! Then I, and you, and all of us fell down, Whilst bloody treason flourish'd over us. O, now you weep; and, I perceive, you feel The dint of pity: these are gracious drops. Kind souls, what, weep you when you but behold Our Caesar's vesture wounded? Look you here, Here is himself, marr'd, as you see, with traitors.


[First Citizen]

      

O piteous spectacle!


[Second Citizen]

      

O noble Caesar!


[Third Citizen]

      

O woful day!


[Fourth Citizen]

      

O traitors, villains!


[First Citizen]

      

O most bloody sight!


[Second Citizen]

      

We will be revenged.


[All]

      

Revenge! About! Seek! Burn! Fire! Kill! Slay! Let not a traitor live!


[Antony]

      

Stay, countrymen.


[First Citizen]

      

Peace there! hear the noble Antony.


[Second Citizen]

      

We'll hear him, we'll follow him, we'll die with him.


[Antony]

      

Good friends, sweet friends, let me not stir you up To such a sudden flood of mutiny. They that have done this deed are honourable: What private griefs they have, alas, I know not, That made them do it: they are wise and honourable, And will, no doubt, with reasons answer you.

      

I come not, friends, to steal away your hearts: I am no orator, as Brutus is; But, as you know me all, a plain blunt man, That love my friend; and that they know full well That gave me public leave to speak of him: For I have neither wit, nor words, nor worth, Action, nor utterance, nor the power of speech, To stir men's blood: I only speak right on; I tell you that which you yourselves do know; Show you sweet Caesar's wounds, poor poor dumb mouths, And bid them speak for me: but were I Brutus, And Brutus Antony, there were an Antony Would ruffle up your spirits and put a tongue In every wound of Caesar that should move The stones of Rome to rise and mutiny.


[All]

      

We'll mutiny.


[First Citizen]

      

We'll burn the house of Brutus.


[Third Citizen]

      

Away, then! come, seek the conspirators.


[Antony]

      

Yet hear me, countrymen; yet hear me speak.


[All]

      

Peace, ho! Hear Antony. Most noble Antony!


[Antony]

      

Why, friends, you go to do you know not what: Wherein hath Caesar thus deserved your loves? Alas, you know not: I must tell you then: You have forgot the will I told you of.


[All]


Most true. The will! Let's stay and hear the will.


[Antony]

      

Here is the will, and under Caesar's seal. To every Roman citizen he gives, To every several man, seventy-five drachmas.


[Second Citizen]

      

Most noble Caesar! We'll revenge his death.


[Third Citizen]

      

O royal Caesar!


[Antony]

      

Hear me with patience.


[All]

      

Peace, ho!


[Antony]

      

Moreover, he hath left you all his walks, His private arbours and new-planted orchards, On this side Tiber; he hath left them you, And to your heirs for ever, common pleasures, To walk abroad, and recreate yourselves. Here was a Caesar! when comes such another?


2018/12/16 -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 - 브루투스 연설과 안토니우스 연설 (Brutus’s Spe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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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 연설 (Brutus’s Speech)

[해외 명 연설] 브루투스 연설

Brutus’s Speech


English vesion is below.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줄리우스 시저(The Tragedy of Julius Caesar) 중에서 -


이 작품은 매우 유명하여 역사적 사실보다 대중에게 더 친숙한 이야기가 되었다. 상당수의 유명한 장면은 허구이며, 이 블로그에서 소개할 브루투스의 연설 장면도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한 허구로서 유명한 구절들이 많다.


브루투스의 연설 사진


<브루투스의 연설문>


[브루투스]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로마 시민 여러분! 조용히 제 말을 경청해 주십시오.

저의 명예를 믿고 존중하신다면 제 말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현명하게 저를 판단해 주시고, 보다 현명한 판단을 위해 여러분의 이성을 일깨워 주십시오.

 

만약 여기 모인 분들 가운데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 분에게 시저에 대한 브루투스의 사랑이 그에 못지않다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면 아마 '그는 왜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에게 역모를 했느냐‘ 며 따질 것입니다. 제 답변은 이렇습니다.

‘제가 카이사르를 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카이사르가 살아서 노예가 되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카이사르가 죽고 자유시민으로 살길 원하십니까? 

카이사르가 저를 사랑했기에, 저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저는 그가 행운을 얻었을 때, 기뻐했고, 그가 용맹함을 보였을 때,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야심을 품고 있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죽인 것입니다.

그의 사랑에 대해서는 눈물이 흘렀고, 그의 행운에 대해서는 기쁨이 넘쳤으며 그의 용맹함에 대해서는 존경심이 들었지만 그의 야심에 대해서는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중에 노예로 살고 싶을 만큼 비천한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건 저의 잘못입니다.

이 중에 로마인이 되고 싶지 않을 만큼 야만적인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도 저의 잘못입니다.

이 중에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지 않을 만큼 비열한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역시도 저의 잘못입니다.

만약 그런 분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대답을 기다리며 잠시 연설을 멈추겠습니다.


[모두] 


“아무도 없소! 브루투스,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소!” 


[브루투스]


그러면 제가 한 행동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제가 카이사르에게 한 행동은 여러분이 브루투스에게 할 행동일 뿐입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전말은 카피톨에 기록될 것입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훌륭한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명예가 훼손돼서는 안되며

또한 그는 이미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그의 죄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을 것입니다.


(카이사르의 시신을 운반하는 무리들과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들어온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애도하며 카이사르의 시신과 함께 들어옵니다.

그는 카이사르를 시해하는데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여러분과 함께 공화국의 일원으로서 카이사르의 죽음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말만하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저는 로마의 이익을 위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만약, 로마가 나의 목숨을 원한다면

내 몸에 똑같은 칼이 박히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2018/12/16 -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 - 안토니우스 연설 (Antonio’s Speech)


<영어 원문>


[Brutus]


Be patient till the last. Romans, countrymen, and lovers! hear me for my cause, and be silent, that you may hear: believe me for mine honour, and have respect to mine honour, that you may believe: censure me in your wisdom, and awake your senses, that you may the better judge.

      

If there be any in this assembly, any dear friend of Caesar's, to him I say, that Brutus' love to Caesar was no less than his. If then that friend demand why Brutus rose against Caesar, this is my answer: Not that I loved Caesar less, but that I loved Rome more. 


Had you rather Caesar were living and die all slaves, than that Caesar were dead, to live all free men? As Caesar loved me, I weep for him; as he was fortunate, I rejoice at it; as he was valiant, I honour him: but, as he was ambitious, I slew him. There is tears for his love; joy for his fortune; honour for his valour; and death for his ambition. 




Who is here so base that would be a bondman? If any, speak; for him have I offended. Who is here so rude that would not be a Roman? If any, speak; for him have I offended. Who is here so vile that will not love his country? If any, speak; for him have I offended. I pause for a reply.


[All]


None, Brutus, none.


[Brutus]


Then none have I offended. I have done no more to Caesar than you shall do to Brutus. The question of his death is enrolled in the Capitol; his glory not extenuated, wherein he was worthy, nor his offences enforced, for which he suffered death.

      

[Enter ANTONY and others, with CAESAR's body]

      

Here comes his body, mourned by Mark Antony: who, though he had no hand in his death, shall receive the benefit of his dying, a place in the commonwealth; as which of you shall not? With this I depart,—that, as I slew my best lover for the good of Rome, I have the same dagger for myself, when it shall please my country to need my death. 


2018/12/16 -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 - 안토니우스 연설 (Antonio’s Speech)


브루투스의 연설을 영상으로 보실 분은 아래 그림에 유튜브 링크를 올려 두었으니 참고해 주세요.

브루투스 연설 유튜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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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최초의 전등, 최초의 영어 교육 (미스터 션샤인 역사 배경)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최초의 전등, 최초의 영어 교육 

(미스터 션샤인 역사 배경)


미스터 션샤인 2화 역사적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영상으로 보실 분은

맨 아래 그림에

유튜브 링크를 올려 두었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뭐야! 맛이 왜 이래? 사약이야 뭐야?"

"거 목소리 낮추게, 폐하께서도 즐겨 드신다는 가배라는 탕일세."


-미스터 션샤인 2화 中-


최초의 다방 이미지


고종은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하며 특히,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처음 접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조선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임을 세계에 알린 미국의 천문학자 로웰의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에서 1884년에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실제로는 이 기록이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커피와 관련한 기록이다. 




또한, 선교사들의 기록을 통해 아관파천 이전에도 커피에 관한 구절을 볼 수 있고, 1883년에 보빙사가 미국을 방문하면서 커피의 존재를 알았을 수도 있다. 이미 전부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과 청, 그리고 많은 선교사들로 인해 더 이전부터 커피가 소개되었을 거라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정확히 언제인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조선에 커피가 소개된 후, 빠르게 전파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참고로 커피 중에서도 믹스 커피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발한 것으로 예전에는 우리 나라를 처음 방문한 외국인이 처음 맛을 보면 대부분 저렴한 가격에 놀라운 맛에 좋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


"드디어 내일 다시 종로에 가로등이 점등 됩니다."


-미스터 션샤인 2화 中-


최초의 전기 이미지


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으로 조선은 서양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미국과 수교를 하였고 조선은 수교에 대한 보답으로 다음 해인 1883년(고종 20년) 민영익을 필두로 한 11명으로 구성된 최초의 미국 사절단인 보빙사를 미국에 파견했다. 사절단은 당시 시험 보급 단계였던 전등 설비에 크게 놀라며 충격을 받았고 이들이 귀국한 후 조선은 전등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조선은 우리나라에 전등을 설치하기 위해 1884년 9월 유명한 발명가인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이 세우고 경영하고 있던 에디슨 전기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갑신정변이 일어나 전등 설비 추진은 계약한 날에 비해 조금 늦어지게 되었다. 1886년 11월 전기 기술자 윌리엄 맥케이(William Mckay)를 초빙하여 1887년 1월에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를 완공했다. 그리하여 1887년 3월 6 일에 처음으로 점등식이 거행되었고 ‘도깨비불’ 을 보러 몰려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이는 우리보다 서양 문물을 더 빨리 받아들인 청나라의 자금성은 물론 메이지 유신으로 급격하게 변혁하고 있던 일본의 궁성보다도 빠른 궁궐 점등이었다. 


에디슨이 백열전구 특허를 얻은 것은 1880년으로 불과 7년 후인 1887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전기가 공급된 것으로 에디슨도 머나먼 동양의 신비한 나라의 왕궁에서 자신이 발명한 전등이 켜지게 된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전기를 일으키는 환경이 열악하여 시스템이 불안전 하여 불이 켜진 채로 지속되지 못하고 자주 꺼지곤 해서 ‘건달불’ 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게다가 발전기의 냉각 용수가 연못으로 역류 하며 물고기가 떼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전기 기사 맥케이가 조수의 총기 오발 사고로 사망하면서 전등의 운영이 중지되었다가 1887년 9월 새롭게 영국인 퍼비가와 포사이스를 초청하면서 재개되었다.


13년 뒤인 1900년 4월 10일, 전차 운행이 밤 10시 까지로 연장되면서 밤에 정거장과 매표소를 밝혀줄 불이 필요해졌다. 그리하여 종로에 가로등 3 개가 점등 되어 우리나라 민간에 최초의 전깃불이 켜졌고, 현재 이 날을 전기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최초의 영어 교육


"니 혹시 신식학당에 다니나?"

"네, 거기서 잉글리쉬를 배웁니다."


-미스터 션샤인 2화 中-


배재학당 이미지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조선은 당시 수교 협상 당시 영어 구사가 가능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중국인 통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과 수교를 맺은 조선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지식인이 필요했고 1883년 동문학을 설립했다. 


동문학은 영어 교육을 하는 학교라기 보다는 통역관 양성을 주목적으로 한 일종의 통변 학교였지만, 교육 과정이 부실하여 졸업생들이 통역관을 하기 쉽지 않았다. 이후 새로운 관립 학교인 육영 공원이 생기면서 동문학은 폐지되었다. 육영 공원은 최초의 근대식 공립 교육기관으로 선생은 모두 선교사로 구성되었다. 대상은 양반에 절반은 현직 관료로서 이는 통역 능력을 갖춘 관리를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교육은 영어로 수업 했다. 초반에는 기숙사 생활을 규칙으로 하며 수업 태도도 좋았으나, 과거제 만이 출세의 길이라 생각하던 학생들은 언어를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여 점차 수업에 대한 열정은 식었고, 각종 핑계를 대며 수업에 결석하였고, 수업 시간이 단축되기도 했다. 교사들은 이런 학생 태도와 정부의 미흡한 지원에 실망하며 차례로 교사를 그만두었고 결국 1894년 폐교되었다.


1885년에는 선교사 아펜젤러가 배재 학당을 설립하였다. 이는 외국인이 세운 최초의 근대 사립학교이자 근대식 중등 교육기관이다. 성경 마태복음 20장의 말씀을 토대로 "크게 되려는 사람은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학훈을 내세우며 두 명의 학생으로 출발하였으며, 여러 과목을 가르치며 국민을 계몽하며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는 동시에 선교사가 설립한 만큼 과목 중에 성경이 포함되는 등 기독교적 정신과 복음을 전파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1886년에는 선교사 스크랜튼 부인이 한 여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이화 학당이 설립되었다. 이화 학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 학교로 여성 교육의 효시가 되었다. 이는 이화여대의 전신이기도 하다. 이화 학당도 역시 선교사가 설립하여 여성 교육과 지위 향상, 그리고 여성을 통한 복음 전파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전히 교육은 남성을 위한 것으로 생각되었고, 여성에게는 모든 것이 제한되어 있어 교육 방법이나 교과 과정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교육 중에 집으로 끌려가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 나라 최초의 여자 미국 유학생이자 최초의 여자 의사인 에스더 박도 이화 학당 출신이다. 


미스터 션샤인 2화 역사적 배경을

유튜브 영상으로 보실 분은

아래 그림을 클릭해 주세요.

미스터 션샤인 2 역사 배경 유튜브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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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임청각을 허물어 철길을 낸 일본 - 미스터 션샤인 역사 배경

[미스터 션샤인 역사 배경] 

이상룡, 임청각을 허물어 철길을 낸 일본


“일본이 러시아랑 전쟁을 하면 실어 나를 물건이 한두 개겠니? 철도가 똑바로 잘 놓여야 지비. 내래 딱 맞는 자리 하나 봐둔 게 있어. 못 알아들은 척 말라. 니 다 알아들었다. …내가 니 처가를 박살 낼기야.”


<미스터 션샤인 19 화 中>


이상룡 선생 이미지


미스터 션샤인 19화 역사 배경

영상으로 더 보실 분은

맨 아래 그림에

유튜브 링크를 걸어 두었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극 중에서 이완익은 철도 부설 계획에 관여하여 철로가 고사홍 대감의 저택으로 지나게 한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비슷한 일이 실제로 있었다. 독립 운동가 이상룡 선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1895년, 안동에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고 1905년, 가야산에 의병 기지를 세우기도 했다. 1907년, 신식 교육기관인 협동 학교를 설립하여 이후, 적극적으로 구국 계몽 운동에도 앞장을 섰다. 그러나 1910년에 경술국치로 강제 병합 당하며 그는 국내에서의 활동에 한계를 체감하였다. 


이에 그가 가지고 있는 노비 문서를 모두 불태우며 자신이 데리고 있던 노비들을 모두 해방시킨 후, 그의 조상에게 물려 받은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1911년, 식솔 등 50여 가구를 이끌고 만주로 가서 동지들과 함께 ‘신흥 무관 학교’ 를 설립하였고 그곳에서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1932년, 그는 ‘나라를 찾기 전에 유골을 고국으로 이장 하지 말라’는 유연을 남기고 순국 하였다.


그의 가문에서는 수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했는데 독립 운동가로 서훈을 받은 사람만 9명이었다. 한 집안에서 독립 운동가가 대거 배출되자 일본은 이 사실을 알고 그 집을 없애려 했다.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중앙선 철도를 놓으며 그의 집, ‘임청각’ 을 철로가 지나도록 했다.




그러나 이 계획에 안동 주민들이 반발하자 그의 집을 일부만 허물고 마당으로 철길을 냈다. 일반적으로 철길은 직선으로 뚫는 것이 정석인데 일본은 그의 집을 훼손하려는 계획을 세운 후, 영주-안동 구간은 직선으로 철길을 뚫지 않고 10여 km 거리를 더 돌아가는 경로를 선택했다. 추가로 터널을 3개나 더 뚫어가면서 까지 각도를 휘게 하여 철길이 지나도록 만든 것이다. 


그 결과, 99 칸이던 임청각 일부가 파괴 당해 원래의 풍광이 사라지고 집 크기가 줄었다. 임청각은 현재 보물 182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는 독립에 자신의 일생과 전 재산을 바쳤고 그의 후손들도 대를 이어 독립 운동에 힘을 쏟으면서 후손들은 해방이 된 후, 생활고를 겪기도 했다.


2018/11/20 -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 - [미스터 션샤인 역사 배경] 일본 귀족 계급 - 화족


미스터 션샤인 19화 역사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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