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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활동/소설

[무서운 이야기] 공백 (자작 단편 소설)

by 아기뼝아리 2019. 1. 13.

[무서운 이야기] 공백 (자작 단편 소설)


공백 이미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 눈을 떴을 때는 내 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제 파티에 갔었는데,,,"


잔뜩 취해서 갑자기 집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으로 돌아온 것은 생각 나는데,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 파티 중간 즈음부터 기억이 끊겨 있다. 그리고 갑자기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긴 이상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리 과에서 나는 딱히 친구가 없고 늘 혼자였다. 나를 파티에 초대할 친구는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파티에 가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부터가 미스테리라고 할 수 있다.


"10 a.m..."


아무래도 오늘은 지각인 것 같다. 다행히 숙취는 없었다. 나는 서둘러 준비를 하고 학교로 출발했다. 




다행히 큰 꾸중은 듣지 않았다. 평소에 눈에 띄지 않는 데다가, 딱히 지각한 적도 없었고, 또 교수님께는 몸이 안 좋아서 늦었다고 말씀드렸더니 별 말 없이 넘어가 주셨다. 


점심시간이다. 난 평소처럼 혼자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고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찰리, 스카프 멋진데?"


베티였다. 치어리더 팀의 주장인 그녀는 전형적인 나쁜 성격에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는 학교의 인기녀였다. 베티가 나에게 말을 건 것은 처음이었다. 


"고.. 고마워"


나는 얼떨결에 인사를 하고 거울을 확인했다. 


'내가 언제 스카프를 했지? 난 스카프가 없는데...'


잠시 의아했지만,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했다. 베티는 뭔가 말 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놀란 표정을 하고는 서둘러 강의실로 들어갔다.


(공백)




눈을 떴을 때는 휴게실이었다. 갑자기 너무 몸이 안 좋아져서 휴게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다. 벌써 하교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 기억에는 또 하나의 공백이 자리 잡고 있음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요즘 들어 이렇게 내 기억에는 공백이 존재한다. 내 기억의 공백을 눈치챈 것은 최근이었다. 어쩌면 내가 눈치채지 못한 더 오래 전부터 공백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기억에 공백이 존재한다는 것을 눈치 챈 이유는 내가 하는 행동들 때문이다.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들.. 하지 못한 행동들.. 


파티에 간다 거나, 학교에 늦는다 거나, 수업에 빠지고 휴게실에 가는 것 등은 원래 나라면 상상도 못할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들이 있는 곳에 기억의 공백이 있었던 것이다. 


"다중 인격"


집에 돌아온 나는 컴퓨터를 켜서 검색을 해 보았다. 자신이 다중 인격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뭐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 기억의 공백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알츠하이머"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도 한 번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저녁 9시에 약속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샤워를 하고 약속 장소로 서둘러 가고 있었다. 축축히 젖은 스카프가 가을 바람을 만나 차갑게 부딪혔다.




"늦으면 안되는데..."


뭔가 진정할 수 없는 기분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리고 겨우 약속 장소에 도착 했을 때는 8 시 58분 이었다. 시계를 확인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찍 왔네?"


그는 이미 장소에 나와 있었다.


(공백)


눈을 떴을 때는 내 방 침대 위였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 오늘은 아무래도 학교를 쉬어야 할 것 같다. 어제는 클럽에 가서...또 기억에 공백이 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 분명 너무 취해서 집에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 왔는데, 클럽에 갔던 것은 기억나는데, 그 사이에 기억이 없다. 커피를 마셔야겠다. 나는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커피숍으로 향했다. 오후 두 시였다. 


"아메리카노 샷 추가해 주세요."


나는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제레미 웨인'




주머니에는 '제레미 웨인' 이라고 적힌 종이가 있었다. 


"이건 뭐지? 왜 내 주머니에 들어있지?"


한참을 생각하며 그 종이 조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제레미 웨인이라면 얼마 전에 우리 과에 편입한 남학생이다. 말이 없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지만, 말도 안되게 잘생긴 외모에 그의 주변에 풍기는 미스테리한 오오라 때문에 많은 여학생들이 속으로 좋아하는 인기남이다. 나랑 전혀 상관 없는 사람.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이라고...


"손님, 계산요?"


"아, 죄송합니다. 여기 있어요."


나는 당황하며 서둘러 계산을 하고 가게를 빠져 나오려고 했다.


"스카프가 예쁘네요."


이렇게 직원의 립 서비스를 받으며 서둘러 가게를 빠져 나왔다. 


다음날 아침, 나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학교에 갔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애들이 뭔가 계속 날 보며 수근 거리는 것 같다. 난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이어폰의 음악을 크게 틀었다.


"찰리.."


"찰리.."


"찰리!"


누군가 내 이어폰을 잡아당겨 빼면서 부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베티였다.


"너 제레미랑 사귄다며?"


그녀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무슨 소리야? 걔랑 말 한 적도 없는데"


난 당황하며 말했다.


"같이 어제 아이비 클럽에 갔다고 소문 다 났어."


"누가 그래?"


"과 톡방에 너랑 제레미가 클럽에서 놀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어."


베티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범생이가 웬일이래? 아무튼 일 냈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레미랑 나는 말도 섞어 본 적이 없는 사이인데, 사진이 찍혔다니... 그러고 보니 종이 조각에 적혀있는 제레미 웨인 이라는 글씨는 내 것이 맞다. 나는 그와 관련된 뭔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에 틀림 없다.


서둘러 스마트 폰으로 톡방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 사진은 이미 삭제 된 후였다. 그리고 나의 예상을 뒤엎고 사람들의 관심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 날 하루는 조용하게 넘어갔다.


"찰리!"


하교 길에 누군가 나를 불렀다. 베티였다. 요즘 왜 이 아이가 자꾸 나에게 말을 거는지 모르겠다.


"집에 같이 가자."


나는 얼떨결에 베티와 함께 하교 하게 되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나는 집에 거의 다 와 갈 때 쯤, 베티에게 말했다. 베티의 파란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석양에 그녀의 금발 머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참 예쁜 아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 찰나..


"제레미라면 그만 두는 게 좋아"


베티는 어렵게 입을 떼었다.


"무슨 소리야? 학교에서 얼굴 보는게 다인데,, 사진은 합성 같은게 틀림 없어. 애당초 왜 그런 합성 사진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진, 내가 찍었어."


"뭐??"


"그 사진, 내가 찍었다구!"


뭐야.. 질투냐? 라는 생각이 스치면서도, 나는 혼란스러웠다. 정말로 내 기억 속에 제레미는 없다. 의아한 표정을 베티는 읽었는지 베티가 입을 떼었다.


"너 애나 알지?"


베티가 말했다. 애나 라면.. 지난 학기에 실종된 베티의 단짝 친구... 마약 중독에 빠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알코올 중독이라는 이야기도 있는,,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언급하지 않게 된 치어리더 팀 전 리더였다.


"알지.. 걔 모르는 애가 어딨니?"


나는 되물었다. 뭔가 가슴속이 진정되지 않는다. 베티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애나는 내 베프였어. 같이 쇼핑도 가고, 점심도 먹고, 파티도 하고, 술도 마시고..."


베티는 계속해서 얘기 했다.


"걘 마약 중독자 같은거 아냐. 노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은근 겁이 많아서 선을 넘거나 하진 않아."


나는 계속해서 베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내 생각엔 걔가 사라지기 몇 주 전부터 제레미를 만났던 것 같아."




"뭐??"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틀림 없어! 그리고 스카프... 애나도 어느 날부터 계속 스카프를 매고 있었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레미는 뭔가 위험한 녀석인 것 같아. 너 수준에서는 사귀기 힘든 애가 다가와서 좋은건 이해 하는데, 정말 너 그만 두는게 좋아"


그렇게 말을 던지고, 베티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 저녁도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 날은 그가 차로 집 앞까지 데리러 오기로 했다. 7시 까지 준비 해야 한다. 늦으면 그 사람이 화 낼지도 몰라. 나는 서둘러 준비를 하고 그를 기다렸다. 저녁 7시. 나는 문 밖에 나가 그를 기다렸다. 그는 제 시간에 도착했고, 나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가고 있다.


"제레미?"


나는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익숙한 듯 운전만 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생각해보면, 왜 나는 제레미가 오늘 저녁에 나를 데리러 온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귀찮은 사진이 찍혀서 밖에서는 만나지 않는게 좋겠어."


그는 무심하게 말했다. 나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뭔가 말하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가만히 있었다. 심장이 요동치는 것이 뭔가 진정이 되지 않는다.


(공백)


다음 날 아침, 난 내 방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어지럽다. 그리고 내 기억에는 또 하나의 공백이 생겼다. 어제 누군가 나를 데리러 왔다는 것 까지는 생각나는데...그의 집에 갔고.. 갑자기 피곤해져서 집에 가겠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누구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다. 그날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베티를 찾아갔다. 


'그녀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확신을 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기억의 조각들이 계속해서 나를 망가뜨리는 것 같다.


"베티!"


나는 베티를 불렀다.


"부탁할게 있어."


나는 베티에게 오늘 저녁에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고, 거절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남은 카드는 베티 밖에 없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수업을 마치고 베티는 친구와 숙제를 해야 한다고 어머니께 전화를 하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얼마 전에 발견한 제레미 웨인이라는 이름이 적힌 종이 조각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기억의 공백에 관해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아무튼 제레미는 위험한 것 같으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근데 말이야, 찰리,,"


그때 베티가 입을 열었다.


"너 스카프를 왜 집에서 하고 있니? 답답하지 않아?"




"글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왜?"


"너 스카프 매일 바뀌는 것 같은데,, 그리고 최근에 항상 스카프를 착용하고 있잖아."


"그랬나..?"


뭔가 가슴이 요동친다. 머리가 아파온다.


"집에서는 풀지 그래?"


그녀는 내 스카프를 잡아 당기려고 했다.


"안돼!"


나는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저지했다.


"이거 계속 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단 말야!!"


나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베티는 당황한 듯 했다. 그리고 이내 나에게 되물었다.


"누가 그랬어?"


머리가 아파온다.


"모르겠어,, 어쨌든 풀면 안돼"


나는 단호히 말했다. 나의 단호한 목소리에 내 자신도 놀랐다. 그 때, 베티는 뭔가를 결심한 듯 나에게 다가 오더니 스카프를 힘으로 풀려고 했다. 나는 미친 듯이 저항했지만, 베티는 운동 신경이 좋은 아이였고, 난 요즘 계속해서 무기력한 상태였다. 결국 내 스카프는 베티에 의해 풀어졌다.


"이게뭐야?!!"


베티는 놀라며 소리쳤다. 나는 스카프를 풀면 안된다는 생각에 당황하고 있었고, 베티는 내 손을 잡아 끌고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보여 주었다.


"이게 뭐야!"


난 너무나 충격적인 내 모습에 뒤로 넘어졌다. 내 목에 난 수많은 상처들.. 무엇보다도 선명한 송곳니에 물린 자국들. 내 목은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꽤 오래된 상처들이었고, 이미 곪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저녁 9시에 약속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세수를 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티는 그런 나를 어이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뭔가 결심한 듯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거기 119죠? 여기 피트거리 189 번지 인데요..."


얼마 되지 않아 엠뷸란스가 도착했고, 나는 병원으로 연행되고 있었다. 9시가 다가오자 더욱 더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나는 엠뷸란스 안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고, 결국 진정제를 맞고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병원이었다. 목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옆에는 베티가 잠들어 있었다. 밤 10시 50분 이었다. 이미 9시 약속은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분명 9시에 약속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나를 데리러 오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분명 베티가 아니었다면 내일 아침 내 방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또 하나의 기억의 공백이 생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레미 웨인.. 나의 사라진 기억 속에는 분명 그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목에 난 흉터들, 사라진 기억들, 요즘 들어 계속 어지럽고 힘이 없는 이유..


"제레미는 도대체 뭘까?"


적어도 그는 내 기억을 삭제하고, 내 목에 상처를 냈다. 그리고 스카프를 하게 해서 그 상처를 감추도록 나를 조종했다. 어쩌면 그는 초능력자나 뱀파이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일 동안 학교에 빠지게 되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 까지 학교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의사가 말하기를 내 몸의 헤모글로빈 지수가 너무 낮아져 있어서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은 기억에 구멍이 없다. 종종 베티가 찾아 왔지만, 몇 주 전부터 발걸음이 끊겼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몸이 서서히 회복되었고, 학교에 돌아갈 수 있었다. 베티가 있었다. 여전히 예뻤다. 예쁜 스카프 색깔이 그녀의 얼굴 색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레미 웨인에 대해서는 둘 다 서로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내심 안도하면서 원래 나의 생활, 언제나 혼자인 생활로 돌아갔고, 몇 주 후 베티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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