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사건, 사태] 날짜로 보는 역사 정리

[한국 현대사 사건, 사태] 날짜로 보는 역사 정리

한국현대사정리
한국 현대사 정리

《1·21 사태》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124군부대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서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이다. 이들은 경찰의 검문과정에서 정체가 탄로나자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하면서 격렬히 저항했고, 이 과정에서 양측에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31명 중에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김신조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사건은 향토예비군이 창설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2·28 대구 학생 시위》

1960년 2월 28일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 독재에 항거하여 대구에서 일어난 학생의거이다. 당시 정부에서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던 야당 후보 장면의 선거 유세장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일요일에 등교를 하도록 조치하였는데, 이에 반발한 학생들에 의해 시위가 발생했다. 이는 학생이 시위의 주체라는 점과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이후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3·15 부정 선거》

1960년 3월 15일

1960년의 대통령 선거와 부통령 선거에서 당시 집권하고 있던 자유당정권에 의해 자행된 대대적인 선거부정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잇따른 경쟁 대선후보의 죽음으로 이승만은 단독 후보로 대선을 치르게 되면서, 부통령 선거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선거가 명백한 부정이라는 여러가지 정황이 드러나면서, 결국 4·19 혁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4·3 사건》

1948년 4월 3일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이 주도한 무장한 350여명이 제주도에 있는 12개의 경찰지서 등을 급습하면서 시작되었다. 정부에서는 군 병력을 제주에 파견하여 대항하며 대대적인 토벌작전이 이루어졌다. 1949년 6월에 무장대의 총책이 사살되면서 소강사태에 접어들었다가, 다음 해 6·25전쟁이 발발한 후, 여러 죄목으로 학살이 자행되며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4·13 호헌조치》

1987년 4월 13일

호헌(護憲)은 현행 헌법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1985년 총선 이후 대통령 간선제로 선출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각계 각층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대한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다. 이에 불안을 느낀 전두환 정권은 일체의 개헌 논의를 중단하는 조치를 단행하고 1988년 2월에 정부를 이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호헌조치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고,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

 

 

《4·19 혁명》

1960년 4월 19일

자유당 정권에 의해 자행된 3·15부정선거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전국적인 시위를 이른다. 처음에는 소규모의 시위가 이어지다가, 실종자로 처리되었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 파편이 박힌 채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며 시위는 대규모의 전국적 시위로 변모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발표하면서 제1공화국은 끝이 났다.

 

《4·27 판문점선언》

2018년 4월 27일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판문점에서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합의하여 발표한 선언문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라고 부른다.

 

《5·16 군사 정변》

1961년 5월 16일

육군 소장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육군 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군사 정변이다. 4·19혁명으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5·16 군사 정변으로 인해 장면 내각이 붕되되면서 제2공화국은 끝이 났다. 반면에 실권을 잡은 박정희는 2년 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제3공화국이 출범하게 되었다.

 

 

《5·18 민주화 운동》

1980년 5월 18일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신군부 세력 퇴진, 계엄령 철폐, 민주 정부 수립 등을 요구하며 일어난 대규모의 민주화 운동이다. 정부는 계엄군을 투입하여 강경 무력 진압을 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시위는 1980년 5월 27일까지 이어지다가 결국 탱크를 앞세운 진압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시위 기간 동안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하여 한참이 지나서야 언론에 보도되었다.

 

《6·3 항쟁》

1964년 6월 3일

1964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상에 반대하여 일어난 시위이다. 박정희 정권은 한일국교정상화에 이은 대일청구권을 통해 근대화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야당과 학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이에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시위 진압에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1년 후 한일 수교가 성립되었다.

 

《6·10 민주 항쟁》

1987년 6월 10일

대통령 간선제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4·13 호헌조치를 통해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고자 했으나,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요구는 날로 커져만 갔다. 그 외에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했다. 그 결과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6·15 남북 공동 선언》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정상회담 이후 두 정상 간의 합의한 내용을 발표한 공동 선언이다. 6·15 남북 공동 선언은 통일문제 자주적 해결, 통일에 대한 공동의 노력, 이산가족 문제 인도적 해결, 남북 교류 활성화, 조속한 실무회담 개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6·23 평화 통일 선언》

1973년 6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선언』이다. 평화적 통일에 대한 노력, 한반도 평화 유지, 남북대화 노력,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공산국가에 대한 관계 개선 추진, 우방국가와의 유대 관계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6·25 전쟁》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남한을 기습적으로 불법 남침하여 일어난 전쟁이다. 1953년 7월 27일에 정전 협정이 체결되어 휴전이 되기까지 3년간 지속되었다.

 

《6·29 민주화 선언》

1987년 6월 29일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조치에 대한 저항으로 6월 민주 항쟁이 일어나며 국민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게 일어나자, 당시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발표한 선언이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8가지 항복의 민주화 조치 실현을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형식으로 발표했다.

 

《7·4 남북 공동 성명》

1972년 7월 4일

1972년에 있었던 남북 고위 정치 회담을 통해 작성한 후, 7월 4일 남북한 당국이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이다. 7·4 남북 공동 성명은 남북한이 분단 이후 최초로 통일과 관련한 내용을 합의하여 발표한 것으로 총 7개의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주적인 통일, 평화통일, 민족 대단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0·19 여수 순천 사건》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의 일부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란 사건이다. 이들은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봉기를 일으켜 여수, 순천 등을 장악했다. 이후, 진압군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반란군과 진압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국가보안법이 제정되고, 반공주의 노선을 강화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0·26 사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또한 차지철 경호실장을 비롯한 5명도 현장에서 사망했다. 김재규의 대통령 살해 동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했으나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이 사건으로 유신체제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12·12 사태》

1979년 12월 12일

군부의 실세였던 보안사령관 전두환, 제9사단장 노태우 등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군사 반란 사건이다. 당시 계엄 사령관이었던 육군 참모 총장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하고 육군 본부를 점령하여 육군 지휘부를 무력화시켰다. 이후 최규하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여 정승화의 연행의 재가를 받으면서 신군부 세력은 중심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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