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四面楚歌) 유래, 뜻 - 초한지 고사성어 원문

사면초가(四面楚歌) 유래, 뜻 - 초한지 고사성어 원문

 

사면초가
사면초가 뜻과 유래

사면초가(四面楚歌)란? 뜻, 해석, 한자

사면초가 한자

사(四): 넉 사

면(面): 얼굴 면

초(楚): 초나라 초

가(歌): 노래 가

 

사면초가 뜻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랫소리

 

사면초가 해석

적에게 둘러싸여 고립된 상태를 말하며 어려운 일에 봉착하여 극복할 방법이 없이 궁지에 빠진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사면초가 출전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

 

 

사면초가 유래

사면초가(四面楚歌)는 초한지에 등장하는 고사성어이다.

 

초(楚)나라의 항우(項羽)와 한(漢)나라의 유방(劉邦)은 천하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고 양측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홍구(鴻溝)라는 지역을 경계로, 서쪽은 한나라 땅, 동쪽은 초나라 땅으로 천하를 양분하기로 하고 휴전을 한다.

 

이후, 항우는 포로로 잡았던 유방의 가족을 돌려보낸 후, 약속대로 군을 철수시켰으나, 유방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의 계책을 따라서 항우를 추격한다.

 

항우는 해하(垓下)라는 곳에서 항우는 한나라 군대에 여러 겹으로 포위를 당하게 되고 어느 날 밤, 한나라는 심리 전술의 일환으로 항복한 초나라 출신의 병사들에게 초나라노래를 부르게 한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 소리에 초나라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항우는 이미 전세가 기울었음을 알고 패배를 직감한다. 항우는 남은 병사를 이끌고 오강(烏江)이라는 곳까지 갔으나 결국 그곳에서 자결하여 31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사면초가 원문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 중에서

 

漢五年(한오년)

한(漢)나라 5년,

 

漢王乃追項王至陽夏南止軍(한왕내추항왕지양하남지군)

한왕(漢王)이 곧 항왕(項王)을 양하(陽夏) 남쪽까지 추격하여 군을 멈추고

※한왕(漢王): 유방(劉邦)

※항왕(項王): 항우(項羽)

 

與淮陰侯韓信建成侯彭越(여회음후한신건성후팽월)

회음후(與淮陰) 한신(韓信)과 건성후(建成侯) 팽월(彭越)과 함께

 

期會而擊楚軍(기회이격초군)

모여서 초군을 치기로 결정했다.

 

至固陵而信越之兵不會(지고릉이신월지병불회)

고릉(固陵)에 이르도록 한신과 팽월의 군대가 오지 않아

 

楚擊漢軍大破之(초격한군대파지)

초가 한군을 공격하여 대파(大破)했다.

 

漢王復入壁深塹而自守(한왕부입벽심참이자수)

한왕은 다시 진지로 들어가서 참호를 깊이 파고 수비를 했다.

 

謂張子房曰(위장자방왈)

(한왕이) 장자방에게 말했다.

※장자방(張子房): 장량(張良), 유방의 책사

 

諸侯不從約爲之柰何(제후부종약위지나하)

제후(諸侯)들이 약조를 따르지 않으니 어쩌면 좋겠소?

 

對曰(대왈)

(장자방이) 대답했다.

 

楚兵且破信越未有分地(초병차파신월미유분지)

초나라 군대를 격파하고도 한신과 팽월은 받은 토지가 없으니

 

其不至固宜(기부지고의)

그들이 오지 않는 것은 참으로 마땅합니다.

 

君王能與共分天下(군왕능여공분천하)

군왕(君王)께서 함께 천하(天下)를 나눈다면

 

今可立致也(금가입치야)

지금이라도 부를 수 있습니다.

 

 

卽不能事未可知也(즉불능사미가지야)

만약 할 수 없다면 일이 어찌될지 알 수 없습니다.

 

君王能自陳以東傅海(군왕능자진이동부해)

군왕께서 몸소 진현(陳縣)의 동쪽에서 바다까지

 

盡與韓信(진여한신)

모두 한신에게 주고

 

睢陽以北至谷城(수양이북지곡성)

수양(睢陽)의 북쪽에서 곡성(谷城)까지

 

以與彭越(이여팽월)

팽월에게 주어

 

使各自爲戰則楚易敗也(사각자위전즉초역패야)

각자 몸소 싸우게 하면 초를 무너뜨리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漢王曰善於是乃發使者(한왕왈선어시내발사자)

한왕은 좋다고 하며 사자(使者)를 보내어

※사자(使者): 어떤 일을 맡아 심부름을 하는 사람

 

告韓信彭越曰(고한신팽월왈)

한신과 팽월에게 고하기를,

 

幷力擊楚.楚破(병력격초초파)

힘을 합쳐 초를 공격하라. 초를 격파하면

 

自陳以東傅海與齊王(자진이동부해여제왕)

진현의 동쪽에서 바다까지 제왕(齊王)에게 주고

※제왕(齊王): 한신

 

睢陽以北至谷城與彭相國(수양이북지곡성여팽상국)

수양의 북쪽에서 곡성까지 팽상국에게 줄 것이다.

※팽상국(彭相國): 팽월

 

使者至韓信彭越皆報曰(사자지한신팽월개보왈)

사자가 이르자 한신과 팽월이 모두 답하며 말했다.

 

請今進兵(청금진병)

지금 진병(進兵)하기를 청합니다.

※진병(進兵): (싸움터로) 병사를 내 보냄

 

韓信乃從齊往(한신내종제왕)

한신은 비로소 제(齊)에서 떠났다.

 

劉賈軍從壽春並行(유고군종수춘병행)

유고(劉賈)의 군대는 수춘(壽春)에서 함께 행군하여

 

屠城父至垓下(도성보지해하)

성보(城父)를 도륙하고 해하(垓下)에 도착했다.

 

大司馬周殷叛楚以舒屠六(대사마주은반초이서도륙)

대사마(大司馬) 주은(周殷)이 초를 배반하여 서현(六縣)의 군사로 육현(六縣)을 도륙하고

 

擧九江兵隨劉賈彭越(거구강병수유고팽월)

구강의 병사들을 데리고 유고와 팽월을 따라서

 

皆會垓下詣項王(개회해하예항옥)

모두 해하에 모여 항왕에게로 나아갔다.

 

項王軍壁垓下兵少食盡(항왕군벽해하병소식진)

항왕군은 해하에 진을 쳤으나 병사는 적고, 식량이 떨어졌는데

 

漢軍及諸侯兵圍之數重(한군급제후병위지수중)

한군과 제후군은 여러 겹으로 포위했다.

 

夜聞漢軍四面楚歌(야문한군사면초가)

밤에 한군이 사방에서 모두 초나라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項王乃大驚曰(항왕내대경왈)

항왕은 크게 놀라며 말했다.

 

漢皆已得楚乎(한개이득초호)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모두 손에 놓은 것인가?

 

 

是何楚人之多也(시하초인지다야)

어찌 초나라 사람이 이리도 많은 것인가!


사면초가와 비슷한 사자성어(동의어, 유의어)

고립무원(孤立無援)

고립무원 한자

孤(외로울 고), 立(설 립), 無(없을 무), 援(도울 원)

고립무원 뜻: 고립되어 도움 받을 곳이 없다.

 

고립무의(孤立無依)

고립무의 한자

孤(외로울 고), 立(설 립), 無(없을 무), 依(의지할 의)

고립무의 뜻: 고립되어 의지할 곳이 없다.

 

사고무친(四顧無親)

사고무친 한자

四(넉 사), 顧(돌아볼 고), 無(없을 무), 親(친할 친)

사고무친 뜻: 사방을 돌아봐도 친한 사람이 없다.

사고무친 해석: 주변에 의지할 곳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고무인(四顧無人)

사고무인 한자

四(넉 사), 顧(돌아볼 고), 無(없을 무), 人(사람 인)

사고무인 뜻: 사방을 돌아봐도 사람이 없다.

= 사고무친(四顧無親)

 

낭패불감(狼狽不堪)

낭패불감 한자

狼(이리 낭), 狽(이리 패), 不(아니 불), 堪(견딜 감)

낭패불감 뜻: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에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낭패불감 해석: 낭(狼)과 패(狽)는 모두 전설상의 동물로 원래 낭은 앞다리가 긴 이리, 패는 앞다리가 짧은 이리를 말한다. 낭은 패가 없으면 서지 못하고 패는 낭이 없으면 걷지 못한다. 따라서 이 둘은 반드시 항상 함께 행동해야 한다. 여기서 유래된 사자성어이다.

 

진퇴양난(進退兩難)

진퇴양난 한자

進(나아갈 진), 退(물러날 퇴), 兩(두 양), 難(어려울 난)

진퇴양난 뜻: 나아가는 것과 물러서는 것 둘다 어렵다.

진퇴양난 해석: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힘든 상황에 빠져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진퇴무로(進退無路)

진퇴무로 한자

進(나아갈 진), 退(물러날 퇴), 無(없을 무), 路(길 로)

진퇴무로 뜻: 나아갈 길도 물러날 길도 없다.

= 진퇴양난(進退兩難)

 

진퇴유곡(進退維谷)

진퇴유곡 한자

進(나아갈 진), 退(물러날 퇴), 維(맬 유), 谷(골짜기 곡)

진퇴유곡 뜻 :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궁지에 빠진 상태

= 진퇴양난(進退兩難)

 

 

초가(楚歌)

초가 한자

楚(초나라 초), 歌(노래 가)

초가 뜻: 초나라의 노랫소리

= 사면초가(四面楚歌)

 

참고. 사면초가와 함께 보면 좋은 고사성어

혈혈단신(孑孑單身)

혈혈단신 한자

孑(외로울 혈), 孑(외로울 혈), 單(홑 단), 身(몸 신)

혈혈단신 뜻: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홀몸

혈혈단신 해석: 의지할 곳이 전혀 없이 오직 자기 혼자뿐인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중과부적(衆寡不敵)

중과부적 한자

衆(무리 중), 寡(적을 과), 不(아니 부), 敵(대적할 적)

중과부적 뜻: 무리가 적으면 대적할 수 없다.

중과부적 해석: 적은 수로는 많은 적을 대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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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목(面目) 유래, 면목 뜻 - 고사성어 원문 이야기

면목(面目) 유래, 뜻 - 고사성어 원문 이야기

 

면목 뜻과 유래

면목(面目)이란? 뜻과 해석, 한자

면목 한자

면(面): 낯(얼굴) 면

목(目): 눈 목

 

면목 뜻

얼굴과 눈

 

면목 해석

체면(體面)이나 염치(廉恥)와 같은 뜻, 남을 대할만한 체면

 

 

면목 출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記)

 

면목 유래, 배경

초나라 항우는 천하의 패권을 두고 한나라 유방과 오랫동안 수많은 전투를 벌였다. 해하(垓下)라는 곳에 이르러 초나라는 군사도 적고 양식도 떨어져 한나라 연합군에게 겹겹이 포위되고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에 몰리게 되고 항우는 패배를 직감하게 된다. 병사가 얼마 남지 않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항우에게 배를 타고 강을 건너 훗날을 기약하라고 하는데 항우가 웃으며 대답하는 말에 담겨있는 고사성어가 면목(面目)이다. (초한지 고사성어)


면목 원문 번역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記) 중에서

於是項王乃上馬騎(어시항왕내상마기)

이에 항우(항왕)가 말을 올라타니

 

麾下壯士騎從者八百餘人(휘하장사기종자팔백여인)

휘하의 장사 중에 말을 타고 따르는 이는 800여명으로

 

直夜潰圍南出馳走(치야궤위남출치주)

그날 밤, 포위를 뚫고 남쪽으로 나와 도주했다.

 

平明漢軍乃覺之(평면한군내각지)

날이 밝은 후에야 한나라 군사는 그제야 이 일을 깨닫고

 

 

令騎將灌嬰以五千騎追之(영기장관영이오천기추지)

기병장수 관영(灌嬰)에게 오천 기를 주어 항우를 추격하게 했다.

 

項王渡淮騎能屬者百餘人耳(항왕도회기능속자백여인이)

항우가 회하(淮河)를 건너고 나니 그를 따르는 것은 불과 1백여 기뿐이었다.

 

項王至陰陵迷失道問一田父(항왕지음릉미실도문일전부)

항우는 음릉(陰陵)에서 길을 잃어버려 한 농부에게 길을 물었다.

 

田父紿曰: 左(전부태왈 좌)

농부가 속이며 말했다. “왼쪽으로 가시오.”

 

左乃陷大澤中(좌내함대택중)

왼쪽으로 가다가 큰 늪에 빠져 버렸고

 

以故漢追及之(이고한추급지)

이로 인해 한나라 군사가 그를 추격해왔다.

 

項王乃復引兵而東(항왕내복인병이동)

항우는 이에 다시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서

 

至東城乃有二十八騎(지동성내유이십팔기)

동성(東城)에 이르자 겨우 28기만 남아있었고

 

漢騎追者數千人(한기추자수천인)

추격해온 한나라 기병의 수는 수천 명이었다.

 

項王自度不得脫謂其騎曰(항왕자탁부득탈위기기왈)

항우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그의 기병에게 말하기를,

 

吾起兵至今八歲矣(오기병지금팔세의)

“내가 군사를 일으킨 지도 이제 8년이나 되었소.

 

身七十餘戰所當者破(신칠십여전소당자파)

몸소 70여 차례를 싸워 내게 맞선 자를 격파하고

 

所擊者服未嘗敗北(소격자복미상패배)

공격한 적은 굴복시켜 패배한 적이 없었으며

 

遂覇有天下(수패유천하)

마침내 천하를 제패하였소.

 

然今卒困於此(연금졸곤어차)

그러나 이제 결국 여기에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으니

 

此天之亡我非戰之罪也(차천지망아비전지죄야)

이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니오.

 

 

今日固決死(금일고결사)

오늘 정말 죽기를 각오하였으니

 

願爲諸君快戰必三勝之(원위제군쾌전필삼승지)

바라건대, 그대들을 위해 통쾌하게 싸워서 기필코 세 차례 승리하여

 

爲諸君潰圍斬將刈旗(위제군궤위참장예기)

그대들을 위해 적장을 참살하고 적기를 베어

 

令諸君知天亡我非戰之罪也(영제군지천망아비전지죄야)

그대들로 하여금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할 것이오.”

 

乃分其騎以爲四隊四嚮(내분기기이위사대사향)

곧 그의 기병을 넷으로 나누어 사방으로 향하게 했다.

 

漢軍圍之數重項王謂其騎曰(한군위지수중항왕위기기왈)

한나라 군사가 그들을 겹겹이 포위하자 항우가 그의 기병에게 말하기를,

 

吾爲公取彼一將(오위공취피일장)

“내가 그대들을 위해 저들의 장수 한 명을 참할 것이오.”

 

令四面騎馳下(영사면기치하)

기병들에게 사방으로 말을 달려 내려가도록 하고

 

期山東爲三處(기산동위삼처)

산 동쪽 세 곳에서 나누어 만나기로 약조했다.

 

於是項王大呼馳下(어시항왕대호치하)

그리고나서 항우가 크게 소리치며 아래로 말을 내달리니

 

漢軍皆披靡遂斬漢一將(한군개피미수참한일장)

한나라 군사는 모두 흩어졌고, 마침내 한 장수를 참살했다.

 

是時赤泉候爲騎將追項王(시시적천후위기장추항왕)

이 때, 기마대 장수 적천후(赤泉候)가 항우를 추격하자

 

項王瞋目叱之(항왕진목질지)

항우가 눈을 부릅뜨고 그를 꾸짖으니

 

赤泉候人馬俱驚辟易數里(적천후인마구경벽역수리)

적천후는 사람과 말이 모두 놀라서 몇 리 밖으로 달아났다.

 

與其騎會爲三處(여기기회위삼처),

항우는 산 동쪽 세 곳에서 그의 기병을 만났고

 

漢軍不知項王所在,(한군부지항왕소재)

한나라 군은 항우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여

 

 

乃分軍爲三復圍之(내분군위삼복위지)

곧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다시 그들을 포위했다.

 

項王乃馳復斬漢一都尉(항왕내치복참한일도위)

항왕은 이에 말을 달려 다시 한나라 도위 한명을 참살하고

 

殺數十百人復聚其騎亡其兩騎耳(살수십백인복취기기망기양기이)

1백여 명을 죽인 후, 다시 기병을 모아보니 단 2기를 잃었을 뿐이었다.

 

乃謂其騎曰:何如(내위기기왈하여)

이에 항우는 기병들에게 말하기를, “어떠하오?”

 

騎皆伏曰: 如大王言(기개복왈:여대왕언)

기병들이 모두 엎드려 말하기를, “대왕의 말씀대로입니다.”라고 했다.

 

於是項王乃欲東渡烏江(어시항왕내욕동도오강)

이 때 항우는 동쪽으로 오강(烏江)을 건너려고 했다.

 

烏江亭長檥船待謂項王曰(오강정장의선대위항왕왈)

오강의 정장(亭長)이 배를 대고 기다리다가 항왕에게 말하기를,

 

江東雖小地方千里(강동수소지방천리)

“강동(江東)이 비록 작다고는 하나 땅이 사방 천리요,

 

衆數十萬人亦足王也(중수십만인역족왕야)

백성들의 수가 수십만이니 그곳 역시 충분히 왕이 되실 만한 곳입니다.

 

願大王急渡今獨臣有船(원대왕급도금독신유선)

바라건대 대왕께서 빠르게 건너십시오. 지금 오직 신에게만 배가 있으니,

 

漢軍至,無以渡(한군지무이도)

한나라 군이 오더라도 강을 건널 수 없을 것입니다.”

 

項王笑曰(항왕소왈)

항우가 웃으며 말하기를,

 

天之亡我,我何渡爲(천지망아아하도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데 내가 건너서 뭣 하겠소.

 

且籍與江東子弟八千人渡江以西(차적여강동자제팔천인도강이서)

또 강동의 젊은이 8천명과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는데

 

今無一人還(금무일인환) 지금 한사람도 돌아오지 못하였소.

 

縱江東父兄憐而王我(종강동부형련이왕아)

비록, 강동의 부모형제들이 불쌍히 여겨 나를 왕으로 삼는다 해도

 

 

我何面目見之(아하면목견지)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볼 수 있겠소.”

 

乃謂亭長曰(내위정장왈)

그리고 정장에게 말하기를,

 

吾知公長者(오지공장자)

“나는 그대가 덕망 있는 사람임을 알고 있소.

 

吾騎此馬五歲(오기차마오세)

내가 이 말을 탄지 오년이 되었는데

 

所當無敵嘗一日行千里(소당무적상일일행천리)

이 말에 대적할 것이 없었고, 하루에 천리를 달렸소.

 

不忍殺之以賜公(불인살지이사공)

차마 이 말을 죽일 수 없으니 그대에게 주겠소.”

 

乃令騎皆下馬步行持短兵接戰(내령기개하마보행지단병접전)

그리고 곧 기병들을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가며 짧은 병기를 들고 싸우게 했다.

 

獨籍所殺漢軍數百人(독적소살한군수백인)

항우는 홀로 한나라 병사 수백 명을 죽였으나

 

項王身亦被十餘創(항왕신역피십여창)

항우도 몸에 10여 군데의 부상을 입었다.

 

顧見漢騎司馬呂馬童曰(고견한기사마여마동왈)

항우는 한나라 기사마(騎司馬) 여마동(呂馬童)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若非吾故人乎(약비오고인호)

“그대는 나의 옛 친구가 아닌가?”

 

馬童面之指王翳曰(마동면지지왕예왈)

여마동은 항우를 외면하며 왕예(王翳)에게 항우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此項王也(차항왕야)

“이 자가 항왕입니다.”

 

項王乃曰(항왕내왈)

그러자 항우가 말하기를,

 

吾聞漢購我頭千金(오문한구아두천금)

“내가 듣기로 한나라 왕이 내 머리에 천금에 사고

 

邑萬戶吾爲若德(읍만호오위약덕)

만호후에 봉해준다고 했으니 내가 그대에게 은혜를 베풀겠다.”

 

 

乃自刎而死(내자문이사)

그리고 항우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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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토중래(捲土重來) 유래, 뜻 – 고사성어 원문 이야기

권토중래(捲土重來) 유래, 뜻 – 고사성어 원문 이야기

 

권토중래

권토중래(捲土重來)란?  권토중래 뜻과 해석, 한자

권토중래 한자

권(捲): 말 권

토(土): 흙 토

중(重): 무거울 중(거듭 중)

래(來): 올 래

 

권토중래 뜻

흙먼지를 말아 일으키며 다시 온다.

 

권토중래 해석

한번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세력을 회복해서 도전한다는 뜻으로 전투에서 패했다가 세력을 회복하여 다시 쳐들어온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넓은 의미로 어떤 일에 실패했다가 실력을 키워 다시 도전해 온다는 뜻이다.

 

 

권토중래 출전

두목(杜牧)의 제오강정(題烏江亭)

※ 두목(杜牧): 당나라 말기의 시인

권토중래 유래

초나라 항우는 한나라 유방과의 치열한 싸움 끝에 해하(垓下)에서 사면초가의 수세에 몰렸고, 결국 30기도 남지 않은 기마병을 이끌고 오강(烏江)으로 도망쳤다. 그곳에 있던 한 사람이 항우에게 말했다.

 

“강동(江東)이 비록 작으나 땅이 사방 천 리에 백성이 수십만 명이나 있으니 족히 왕업을 이룰만한 곳입니다. 다행히 배를 갖고 있는 사람이 저 밖에 없으니 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신다면 적들이 와도 강을 건너지 못할 것입니다” 

 

항우가 말했다.

 

“하늘이 날 버리는데 강을 건너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리고 지난 날, 강동의 젊은이 8천명을 이끌고 왔다가 그들을 모두 잃어버렸는데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의 부모와 형제를 만나겠는가? 설령, 그들이 나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내 양심이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항우는 그렇게 말하고 자기의 애마(愛馬)를 그 사람에게 주고 나서 한나라 병사들과 마지막 전투를 벌였고, 결국은 칼로 자기 목을 찔러 자결하여 생을 마감했다.

 

이로부터 천여 년이 지난 후, 두목이라는 시인이 항우가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곳에서 그를 생각하며 시를 읊었고 여기에 권토중래(捲土重來)라는 말이 등장한다.

 

 

권토중래 원문

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가사불기)

승패는 병가(兵家)의 일이라 기약할 수 없으니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수치를 참고 치욕을 견디는 것이 사내대장부로다

 

江東子弟多才俊(강동자제다재준)

강동(江東)의 자제 중에 뛰어난 인재들이 많으니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다면 끝을 알 수 없었으리라

 

 

권토중래와 비슷한 사자성어(동의어, 유의어)

사회부연(死灰復燃)

사회부연 한자

死(죽을 사), 灰(재 회), 復(다시 부), 燃(사를 연)

사회부연 뜻: 죽은 재가 다시 불탄다.

사회부연 해석: 세력을 잃었던 사람이 다시 세력을 얻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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