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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오적2

[친일파 매국노]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대표적인 친일파]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친일파 매국노 을사오적과 정미칠적, 경술국적은 각각 을사년(1905년)과 정미년(1907년), 경술년(1910년)에 일제가 우리나라의 주권을 침탈한 주요 사건에 찬성하고 협력한 대표적인 친일파 매국노를 이르는 말이다. 이 사건들은 각각 을사조약(을사늑약)과 정미7조약, 경술국치로 불리고 있다. 을사오적이란? 1905년(을사년) 11월 17일, 일제가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조약(을사늑약, 정식명칭: 제2차 한일협약)을 강제로 체결할 당시, 이 조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5명의 친일파 매국노 대신을 을사오적이라고 한다. - 박제순(외부대신) - 이지용(내부대신) - 이근택(군부대신) - 이완용(학부대신) - 권중현(농상공부대신) ※외부대신: 외교에 대한.. 2019. 9. 8.
을사오적과 그 후손들 을사오적과 그 후손들 ‘을사오적’은 1905년, 을사조약 강제 체결 당시 조약에 찬성한 5명의 대신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 고종이 불참한 회의에서 8명의 대신 중에 5명이 찬성하자 일본은 다수결로 통과시켰다. 당시, 을사조약 체결에 찬성을 했던 사람은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이 을사조약에 찬성하였다. 이 외에 참정대신 한규설, 법부대신 이하영, 탁지부대신 민영기는 찬성하지 않았으나 나머지 3명 중 이하영과 민영기도 변절 하여 한일강제병합(경술국치) 이후 작위를 받았다. 이하영은 자작, 민영기는 남작 작위를 받아 결국, 한규설을 제외한 7명이 작위를 받았다. 한규설은 체결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로 반대를 했음에도 .. 2018.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