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계는 중국의 병법서 삽십육계(三十六計) 중, 32번째에 해당하는 계책이다. 일반적으로 적의 병력이 강하고, 아군의 병력이 열세일 때, 마치 방어하지 않는 것처럼 꾸며 적을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계책이다. 공성계는 수세에 몰린 싸움에서 기사회생하는 패전계(敗戰計)에 해당한다.
공성계 유래
공성계와 관련한 여러가지 기록들이 있으나, 가장 유명한 것은 제갈량의 공성계이다. 여기에서는 제갈량의 공성계를 소개하도록 한다.
공성계 출전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
곽충오사(郭沖五事)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갈량 공성계
※제갈량의 공성계는 곽충오사 중, 삼사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곽충오사
→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제갈량에 관한 5가지 일화
진나라가 위나라를 멸망시킨 후, 많은 사람들이 제갈량에 대해, '촉나라 백성들을 고생시키고 힘이 약하고 계획만 거창하여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도 못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 때, 곽충이라는 사람이 제갈량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반박하기 위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제갈량에 관한 다섯 가지 일화를 제시하는데, 이것이 곽충오사이다.
※배송지의 반박
삼국지에 주석을 단 배송지는 곽충이 제시한 다섯 가지 일에 대해 전부 의심스럽다면서 근거를 대며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배송지는 공성계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세 번째 이야기에 관해서도,
①그 당시 사마의는 형주의 도독으로 완성에 주둔하고 있었다는 점,
②평소 위연을 신뢰하지 않았던 제갈량이 많은 병력을 내줄리 없었다는 점,
③설령, 복병이 있었다고 해도 진을 치고 신중을 기하면 되는데 대군을 보유한 사마의가 굳이 달아날 필요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삼국지연의의 공성계
삼국지연의에서도 곽충삼사의 내용이 등장한다.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하며, 병사의 수 등 상세한 내용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다. 연의에서는 좀 더 내용이 추가되어 제갈량이 성벽 위에서 직접 거문고를 뜯는 모습을 묘사하는 등, 제갈량을 조금 더 부각시킨다.
제갈량 공성계 원문
삼국지 촉지 제갈량전 중에서
郭沖三事曰(곽충삼사왈)
곽충삼사(郭沖三事)에 이르기를,
※郭沖三事(곽충삼사): 곽충이 말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제갈량에 관한 다섯 가지 일화 중 세 번째 이야기
亮屯于陽平(양둔우양평)
제갈량(諸葛亮)이 양평(陽平)에 주둔하여
遣魏延諸軍并兵東下(견위연제군병병동하)
위연(魏延)과 제군(諸軍)을 보내 군사들을 아울러 동쪽으로 내려가게 하고
亮惟留萬人守城(양유유만인수성)
제갈량은 단지 일만 명을 남겨 성을 지켰다.
晉宣帝率二十萬眾拒亮(진선제솔이십만중거량)
진(晉) 선제(宣帝)는 20만 군사를 이끌고 제갈량을 막았는데
※宣帝(선제): 진나라 선제 → 사마의
而與延軍錯道(이여연군착도)
위연군과 길이 엇갈려
徑至前(경지전)
곧바로 앞에 이르러
當亮六十里所(당량육십리소)
제갈량으로부터 60리 떨어진 곳에서 마주했다.
偵候白宣帝說亮在城中兵少力弱(정후백선제설량재성중병소력약)
척후병이 선제에게 아뢰기를, '제갈량이 성 안에 있고, 군사는 적고, 힘이 미약하다'고 했다.
두 마리의 호랑이가 먹을 것을 두고 다투게 하는 계책(간단히 이호경식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이호경식지계 해석
조조는 유비와 여포가 함께 연대하여 그에게 대항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했고, 이에 참모인 순욱이 제안한 계책을 채택하여 유비와 여포를 서로 싸우게 만들어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하였다. 결국, 이호경식지계에서 두 마리의 호랑이는 유비와 여포를 일컫는 말이다.
이호경식지계 출전
삼국지연의
이호경식지계 배경
조조가 헌제를 옹위하여 허도로 천도를 한 후, 조정은 조조의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었고, 사실상의 모든 실권을 장악했다. 조조는 여러 큰일들을 대충 정리한 후, 모사들과 장수들을 불러 연회를 열고 유비와 여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의논을 한다.
이호경식지계 유래
"유비가 서주에 군사를 머무르고 스스로 서주를 다스리고 있소.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에게 패한 여포까지 소패에 머무르게 하였으니 만약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쳐들어온다면 마음속의 큰 우환이 아닐 수 없소. 이에 대한 좋은 묘책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허저가 말했다.
"제게 정병 오만을 주시면 유비와 여포 두 놈의 머리를 승상께 바칠 것입니다."
순욱이 허저에게 말했다.
"장군은 용맹하지만 책략을 쓸 줄을 모르시는군요. 이제 막 허도로 천도한 상황에서 병사를 사용하는 것은 좋지 못한 생각입니다."
순욱이 조조에게 말했다.
"제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이호경식지계’, 즉 두 마리의 호랑이가 먹을 것을 놓고 다투게 하는 계책입니다. 지금 유비가 서주를 다스리고 있다고는 하나 황제에게서 정식으로 임명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승상께서 황제 폐하께 아뢰어 유비를 서주목으로 임명한 후, 유비에게 은밀히 글을 보내어 여포를 죽이라고 하십시오. 유비가 여포를 죽인다면 더 이상 그를 도울 인물이 없을 것이니 그를 쉽게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여포가 유비를 죽일 것이니 어느 경우든 승상께 유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호경식지계입니다."
조조가 순욱의 계책을 따라 황제에게 주청하여 사자를 서주로 보내 유비를 정동장군 의성정후에 봉하고 서주목을 맡도록 했다. 그리고 밀서 한 통을 함께 보냈다.
그 때, 유비는 허도로 천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황제에게 경하의 글을 써서 허도에 사신을 보내려는 참이었다. 마침 허도에서 사신이 도착하였고, 유비는 황제의 명에 따라 정식으로 서주목이 되었다. 유비는 기뻐하며 연회를 열어 사자를 대접했다.
사자가 말했다.
"이처럼 현덕공께서 황제의 명을 받은 까닭은 조장군께서 황제에게 추천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한 후, 사자는 밀서를 꺼내 유비에게 줬다. 유비는 밀서를 읽고 나서 말했다.
"이 일은 수하들과 의논해봐야 할 것 같소."
연회가 끝나고 사자를 역관에서 쉬게 한 후, 유비는 수하들 여럿과 이일에 대해 의논했다.
장비가 말했다.
"여포는 의롭지 못한 자인데 죽여도 상관없지 않소?"
유비가 말했다.
"여포는 상황이 궁해서 나를 찾아온 것이다. 만약 그를 죽인다면 나 역시 불의한 사람이 될 것이다."
장비가 말했다.
"형님은 사람이 너무 좋아서 문제요."
결국, 유비는 끝내 따르지 않았다.
다음날 유비가 정식으로 서주목에 임명되었다는 말을 듣고 여포가 축하하러 왔다.
"공께서 조정으로부터 은명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축하하러 왔소."
유비가 겸손하게 답례했다. 그 때 갑자기 장비가 칼을 빼듣고 여포를 죽이려 하여 유비는 황망히 장비를 저지했다. 여포는 크게 놀라 말했다.
"익덕(장비)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는가?"
"조조가 네 놈을 의리 없는 놈이라고 하며 우리 형님께 죽여 달라고 했다."
장비가 이렇게 크게 외치니 유비가 거듭 고함을 쳐서 그를 내쫓고 나서 여포와 함께 후당으로 가서 이 일에 대해 여포에게 말하며 조조의 밀서를 보여주었다. 여포가 밀서를 읽은 후, 울며 말했다.
"이것은 조조가 우리 둘을 갈라놓기 위해 꾸민 수작이오."
"형께서는 걱정 마시오. 이 유비는 결코 그런 불의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오."
여포가 거듭 절하며 감사해 한다. 여포는 유비와 술자리를 함께 한 후 저녁이 돼서야 돌아갔다. 관우와 장비가 말했다.
"형님, 왜 여포를 죽이지 않는 것입니까?"
이것은 조조가 나와 여포가 힘을 합쳐 쳐들어올 것이 두려워서 꾸민 계략일세. 우리 둘을 서로 싸우게 하여 중간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속셈인데, 어찌 그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는가?
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옳다고 했다.
"이 도적놈을 죽여야 하오. 여포는 훗날 반드시 큰 화가 될 것이오."
"이것은 장부가 할 짓이 아니다."
다음날 유비는 사자가 돌아가는 것을 배웅하며 조조에게 답장을 보냈다. 사자가 돌아가서 조조에게 유비가 결국 여포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이호경식지계 이후의 상황
결국, 이호경식지계는 성공하지 못하였고, 순욱은 조조에게 그 다음 책략으로 구호탄랑지계를 제안한다.
이호경식지계 원문 번역
操既定大事 乃設宴後堂 聚眾謀士共議曰
조조는 큰일들을 다 정하고 후당에서 연회를 베풀어 군신과 모사를 모아 놓고 함께 의논하여 말하기를,
劉備屯兵徐州 自領州事 近呂布以兵敗投之 備使居於小沛
"유비가 서주에 군사를 머무르며 스스로 서주를 다스리고 있고 근래 패한 여포를 소패에 머무르게 하였소."
若二人同心引兵來犯 乃 心腹之患也 公等有何妙計可圖之
"만약, 두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온다면 이는 가슴과 배의 우환이 아닐 수 없소. 공들에게는 그들을 도모할 어떤 묘책이라도 있소?"
許褚曰 願借精兵五萬 斬劉備 呂布之頭 獻於丞相
허저가 말했다. "바라건대, 정병 오만을 빌려주신다면 유비와 여포의 머리를 베어 승상께 바치겠습니다."
荀彧曰 將軍勇則勇矣 不知用謀 今許都新定 未可造次用兵
순욱이 말했다. "장군은 용맹은 그저 용맹일 뿐 계략을 쓸 줄을 모르시는 것 같소. 이제 막 허도로 도읍을 옮겼는데 바로 군사를 쓰는 것은 옳지 않소."
彧有一計 名曰 二虎競食之計
"저에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이름하여 '이호경식지계'라고 합니다."
今劉備雖領徐州 未得詔命
"지금 유비가 비록 서주를 다스리고 있긴하지만 조명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明公可奏請詔命實授備為徐州牧 因密 與一書 教殺呂布
"명공께서 황제폐하께 주청하여 유비를 서주목으로 삼으시고 은밀히 글을 보내 여포를 죽이라고 하십시오."
事成則備無猛士為輔 亦漸可圖 事不成 則呂布必殺備矣 此乃 二虎競食之計 也
"일이 성사되면 유비를 도와줄 맹사가 없어져 그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고 일이 성사되지 않아도 여포가 반드시 유비를 죽이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이호경식지계입니다."
操從其言,即時奏請詔命, 遣使齎往徐州,封劉備為征東將軍宜城亭侯,領徐州牧;並附密書一封
조조가 그 말을 따라 곧 조명을 주청하여 사자를 서주로 보내어 유비를 정동장군 의성정후에 봉하고 서주목을 맡게 했다. 그리고 밀서 한 통을 함께 보냈다.
卻說劉玄德在徐州 聞帝幸許都 正欲上表慶賀 忽報天使至 出郭迎接入郡 拜受恩命畢 設宴管待來使
한편, 서주에 있는 유현덕은 황제가 허도로 거둥했다는 것을 듣고 바로 글을 올려 경하드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황제의 사자가 왔다는 소식에 성 밖으로 나가 황제의 사자를 영접했다. 사자에게 절하며 은명을 받은 뒤에 연회를 베풀어 사자를 대접했다.
使曰 君侯得此恩命 實 曹將軍於帝前保薦之力也
사자가 말했다. "현덕공이 은명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조장군께서 황제께 힘써 천거했기 때문이오."
玄德稱謝 使者乃取出私書遞與玄德
현덕이 조조를 칭송하고 감사해 하자 사자는 밀서를 꺼내 현덕에게 주었다.
玄德看罷 曰 此事尚容計議
현덕은 밀서를 다 보고나서 말했다. "이 일은 의논해보고 계책을 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席散 安歇來使於館驛 玄德夜 與眾商議此事
연회가 끝나고 사자를 역관에 쉬게 하고 현덕은 밤에 군신들과 함께 이 일에 대해 의논했다.
張飛曰 呂布本無義之人 殺之何礙
장비가 말했다. "여포는 본래 의롭지 못한 자인데 죽여서 거리낄 것이 뭐가 있겠소?"
德曰 他勢窮而來投我 我若殺之 亦是不義
현덕이 말했다. "그는 형세가 궁하여 나에게 몸을 의탁한 것이다. 만약 그를 죽인다면 나도 불의한 자가 될 것이다."
張飛曰 好人難做 玄德不從
장비가 말했다. "사람이 좋아서 탈이오." 현덕은 따르지 않는다.
次日 呂布來賀 玄德教請入見
다음날, 여포는 축하하러 오니 현덕이 여포를 안으로 들여 만나기를 청했다.
布曰 聞公受朝廷恩命 特來相賀
여포가 말했다. "공께서 조정에서 은명을 받은 것을 듣고 특별히 축하하러 왔소."
玄德遜謝 只見張飛扯劍上廳 要殺呂布 玄德慌忙阻住
현덕은 겸손히 답례했다. 그런데 장비가 갑자기 나타나 칼을 빼들고 여포를 죽이려 하니 유비는 장비를 황망히 가로막았다.
布大 驚曰 翼德何故只要殺我
여포는 크게 놀라 말했다. "익덕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는 것인가?"
張飛叫曰 曹操道你是無義之人 教我哥哥殺你
장비가 크게 외치며 말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네놈이 의롭지 못한 놈이라고 하며 우리 형님더러 너를 죽여 달라고 했다."
玄德連聲喝退 乃引呂布同入後堂 實告前因 就將 曹操所送密書與呂布看
현덕은 거듭 소리 내어 꾸짖으며 장비를 내쫓았다. 그리고 나서 여포를 이끌고 함께 후당으로 들어가서 조조의 밀서를 여포에게 보여주면서 앞의 일을 있는 그대로 고했다.
布看畢 泣曰 此乃曹賊欲令二人不和耳
여포는 읽기를 마치고 울면서 말했다. "이것은 조조 도적놈이 우리 둘 사이를 갈라 놓으려는 수작일 뿐이오."
玄德曰 兄勿憂 劉備誓不為此不義之事
현덕이 말했다. "형은 걱정 마시오. 이 유비는 맹세코 이런 불의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오."
呂布再三拜謝 備留布飲酒 至晚方回
여포는 두 번 세 번 감사하며 절하고 유비는 여포를 붙들어 놓고 저녁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신 후에야 돌아갔다.
關 張曰 兄長何故不殺呂布
관우와 장비가 말했다. 형장께서 여포를 죽이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오?"
玄德曰 此曹孟德恐我與呂布同謀伐之 故用此計 使我兩 人自相吞併 彼卻於中取利 奈何為所使乎
현덕이 말했다. "이 일은 조맹덕이 나와 여포가 함께 도모할 것을 두려워하여 꾸민 것으로 우리 둘을 싸우게 하여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것인데 어찌 그가 시킨 대로 할 수 있겠는가?"
關公點頭道是 張飛曰 我只要殺此賊以絕後患
관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옳다고 했다. 장비가 말했다. "나는 다만 도적놈을 죽여 후환을 없애고 싶을 뿐이오."
玄德曰 此非大丈夫之所為也
현덕이 말했다. "이것은 대장부가 할 바가 아니다."
次日 玄德送使命回京 就拜表謝恩 並回書與曹操 只言容緩圖之
다음 날, 현덕은 사자가 허도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하며 은혜에 보답하는 의미로 절을 하며 천천히 도모할 것이라는 내용의 답장을 조조에게 보냈다.
使命回見曹操 言玄德不殺呂布之事
사자가 돌아가서 현덕이 여포를 죽이지 않는 일을 조조에게 보고했다.
操問彧曰 此計不成 奈 何
조조가 순욱에게 물으며 말했다. "이 계획이 성공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좋겠소?"
彧曰 又有一計 名曰 驅虎吞狼之計
순욱이 말했다. "또 하나의 계책이 있으니 이름하여 '구호탄랑지계'라고 합니다."
이처럼 '이호경식지계'가 실패로 돌아가자 순욱은 또 다시 조조에게 '구호탄랑지계'를 제안한다.
서기 265년,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司馬炎)은 조위(曹魏)의 원제(元帝) 조환을 폐한 후,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진(晉)으로 바꾸고 무제(武帝)라 칭했다. 이를 서진(西晉)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미 위촉오 삼국시대는 시대를 마감하였고 위와 촉은 끝이 났으나 여전히 오나라는 남쪽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서기 279년, 진나라 무제는 학문이 깊고 식견이 매우 넓은 진남대장군 두예(杜預)에게 20만의 병력을 주어 오(吳)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당시 오나라를 정벌하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장수들과 대신들은 회의적인 입장이었고 반대를 하던 상황으로 오직 두예를 비롯한 소수의 장수들만이 오나라 정벌을 촉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두예가 오나라 정벌을 떠난 후에도 진나라 조정에서는 계속 군사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두예는 정벌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맞섰다. 중앙군을 지휘한 두예는 왕준(王濬), 왕혼(王渾)과 함께 오의 수도를 압박하였고 오나라 정벌은 두예의 지휘 하에 출병한 지 10일 만에 장강 상류의 여러 성들을 점령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해 2월, 두예는 무창(武昌)을 점령한 후,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열었다. 이 때 한 장수가 말했다.
"백 년 동안이나 적이었던 오(吳)나라를 쳐부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제 계절은 여름을 향해 가는 시점이니 큰 비가 내리고 전염병이 돌 것입니다. 그러니 마땅히 겨울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두예가 말했다.
"그 옛날, 연나라 장군이었던 악의(樂毅)는 제수(濟水)'의 서쪽에서 한 번의 전투로 강대국 제(齊)나라를 굴복시켜 병합하였소. 지금 우리 아군의 사기가 이미 하늘을 찌를 듯이 높으니 그 기세가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소. 대나무를 쪼개는 것은 처음만 힘들 뿐, 몇 마디를 쪼개고 나면 그 뒤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대나무가 스스로 쪼개지게 되니 따로 힘을 들일 필요가 없지 않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아니 되오."
그리고 두예는 바로 장수들에게 오나라의 수도인 말릉(秣陵=건업)으로 진격할 것을 명했다. 진나라 군대가 지나는 곳마다 오나라는 저항하지 않고 항복했다. 이에 두예에게 의견을 냈던 장수도 결국 두예에게 사죄의 글을 올렸다. 서기 280년, 오나라를 다스리던 손호(孫晧)가 항복하며 삼국 중 마지막으로 남은 오나라가 멸망했다. 위촉오 삼국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고, 진나라는 삼국을 통일했다. 사마염은 오나라를 정벌한 전공을 높이 사 두예를 당양현후(當陽縣侯)에 책봉했다.
파죽지세 원문 번역
時眾軍會議,或曰:
그 때 여러 장수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말했다.
百年之寇,未可盡克。
"오나라는 백년의 적으로 한번에 이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今向暑,水潦方降,疾疫將起,宜俟來冬,更為大舉。
이제 여름이 오고 있는 시점으로 큰 비가 내려 전염병이 돌 것이니 마땅히 겨울을 기다렸다가 다시 크게 군을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預曰:
두예가 말했다.
昔樂毅藉濟西一戰以並強齊,今兵威已振,譬如破竹,數節之後,皆迎刃而解,無復著手處也。
"옛날 악의는 제수 서쪽에서 일전으로 강대국 제나라를 병합했소. 지금 아군이 기세를 떨치고 있어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소. 대나무는 처음에는 쪼개기 힘들어도 몇 마디를 쪼갠 뒤에는 칼이 닿자마자 쪼개지니 다시 손을 댈 필요가 없듯이 말이오."
遂指授群帥,徑造秣陵。
마침내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려 곧장 말릉을 향할 것을 명했다.
所過城邑,莫不束手。議者乃以書謝之。
지나가는 성마다 투항하였다. 두예에게 이의를 제기했던 사람들은 편지를 보내 그에게 사죄했다.
파죽지세(破竹之勢)란? 뜻과 해석, 한자
파죽지세 한자
파(破): 깨뜨릴 파
죽(竹): 대나무 죽
지(之): 갈 지
세(勢): 기세 세
파죽지세 뜻
대나무를 쪼개는 듯한 기세
파죽지세 해석
거침없이 맹렬히 나아가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다.
자신의 일 또는 자신의 전문 분야 등에서 승승장구하여 대적할 상대가 없음을 뜻한다.
전투에서 적군의 저항 없이 거침없이 진군 하는 상태
파죽지세 출전
파죽지세라는 고사성어는 '삼국지 진서(晉書) - 두예(杜預)전'에 나오는 고사성어이다. 세여파죽(勢如破竹)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